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발표한 가자지구 평화구상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가결했다. 안보리 결의 채택으로 ‘중동의 화약고’ 가자지구의 실질적인 평화와 재건을 위한 외교적 동력이 확보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가자지구에 투입될 국제안정화군(ISF)의 역할과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여부 등을 놓고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안보리는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15개 이사국 중 비상임이사국 한국을 포함한 13개국 찬성으로 가자지구 평화구상 지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중국과 러시아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기권했다. 결의안이 통과되려면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이 찬성하고 5개 상임이사국(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 중 어느 한 곳도 거부권을 쓰지 않아야 한다. 앞서 중·러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다수의 아랍 국가들이 결의안을 지지한 점을 고려해 기권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평화구상을 제시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서 “유엔 역사상 가장 큰 승인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그는 “전 세계의 더 큰 평화로 이어질 것이고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이라며 “평화위원회 명단과 더 많은 흥미진진한 발표들이 몇 주 안에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안보리는 결의안에서 가자지구 과도 통치기구 역할을 맡는 평화위원회 설립을 승인했다. 평화위는 행정관리 권한을 갖고 재건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평화위 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맡는다. 안보리는 또 유엔 회원국들이 가자지구에 ISF를 배치할 수 있도록 했다. ISF에는 가자지구 치안 유지 및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장 해제 역할이 부여됐다.
안보리 결의는 국제법 효력을 갖는 만큼 가자지구 재건에 국제사회 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중대 전환점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영구적 평화 정착까지는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다. 우선 ISF에 자국군을 파병하겠다고 확약한 국가는 아직 한 곳도 없다. 후보국인 이집트,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등은 하마스와의 무력 충돌을 경계하고 있다. 하마스가 무장 해제를 거부할 경우 ISF가 공격할 수 있는지를 비롯한 기본 임무 규정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마스는 결의안에 무장 해제가 언급된 것에 반발하는 입장문을 냈다.
재건 방식을 두고도 진통이 예상된다. 미국이 가자지구를 서부 적색구역과 동부 녹색구역으로 나눠, 녹색구역부터 재건에 착수한다는 구상이 언론 보도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가자 주민 대부분은 서부에 거주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결의안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개혁과 가자지구 재건이 진전된 후 팔레스타인이 국가 지위에 도달할 조건이 갖춰질 수 있을 것”이라는 언급이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국가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