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제조업체 A사는 기업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인공지능(AI)을 도입하고 싶어하지만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 때문에 실행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생산공정만 해도 AI로 전환하려면 데이터 축적을 위한 라벨·센서 부착부터 CCTV 설치, 데이터 정제, 로봇 솔루션 구축, 추가 인력 투입 등 기존에 생각지 못한 자금이 들어간다”고 토로했다.
국내 제조기업들이 AI 전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자금 부족, 인력난, 도입 효과에 대한 불확신 등 현실적 장벽에 부딪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8일 공개한 ‘AI 전환 실태와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제조업체 504곳 대상 설문조사에서 82.3%는 ‘아직 AI를 경영에 활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대기업의 활용률은 49.2%로 절반에 가까운 반면 중소기업은 4.2%에 그쳐 AI 격차가 매우 컸다.
가장 큰 걸림돌로는 비용이 꼽혔다. 응답 기업의 73.6%가 ‘AI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투자 비용이 부담된다’고 했다. 이 역시 대기업(57.1%)보다 중소기업(79.7%) 비율이 훨씬 높았다.
인력 확보도 문제다. 응답 기업의 80.7%는 사내에 AI 전문 인력이 아예 없다고 답했고, 향후 충원 계획이 없는 기업도 82.1%에 달했다. 14.5%는 내부 인력을 교육해 전문 인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신규 채용을 하겠다는 기업은 3.4%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2023년 기준 한국의 AI 인재는 2만1000명 수준으로 중국(41만1000명) 인도(19만5000명) 미국(12만명)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데다 있는 인재조차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AI 전환이 성과를 낼 것이라는 확신도 부족했다. 적지 않은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 AI 전환을 시도해도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보는 응답이 60.6%였다.
전날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AI 전환 효과 관련 보고서를 봐도 중소 제조업체의 AI 도입 제약 요인으로 ‘데이터 인프라 부족’ ‘전문 인력 부족’ ‘재정적 부담’ ‘인식과 실행 간 괴리’ 등이 지목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 제조업체들은 가장 기대되는 디지털 기술이 AI라고 말하면서도, 절반 이상이 AI 활용 방법을 모른다고 답했다.
대한상의는 AI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기업 역량에 맞는 맞춤형 지원, 도입 단계별 지원, 실증 모범사례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기업들이 AI의 ‘성능’을 체감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 단순한 자금·장비 지원이 아닌 현장 중심의 실질적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이제 AI 관련 데이터 축적과 활용, 인재 영입 등에 뛰어들어야 하는 시점”이라며 “성공 모델 확대, 솔루션 보급 등 제조 현장에서 AI가 확산할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와 강력한 지원 등 실행 전략이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