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추진 잠수함(핵잠수함)의 한국 전략자산 편입은 역내 억제력 구조를 흔들며 동북아 안보 질서를 새롭게 재편할 요인으로 평가된다. 핵탄두를 탑재하지 않아 직접적인 핵 억제력과는 연결되지 않지만 잠재적 핵 옵션까지 고려하면 주변국은 사실상 ‘준(準) 보유국’으로 인식할 수 있다. 동북아 핵 억제 체계가 북·미·중·러 4자 구조에서 사실상 4.5자 구조로 변화하게 되는 셈이다.
우리 해군이 핵잠수함을 실전배치해 운용하게 되면 중국의 해양 진출에 대응할 견제 수단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한국 해군의 주력 잠수함은 디젤 추진 체계로, 중국 핵잠수함과 비교할 때 전략적 공백이 존재했다. 중국은 핵잠수함과 항공모함 전력을 바탕으로 동북아 원해 접근은 물론 한반도 해상 경로 통제 능력까지 확보했다. 우리 군이 핵잠수함을 확보하면 중국 핵잠수함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이동 경로를 추적할 수 있게 된다.
서해와 독도 등 잠재적 분쟁 해역에서 은밀한 해상 경쟁력을 확보하는 효과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한 논리이기도 하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8일 “중국은 우리 서해를 자국 영향권 안으로 편입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해나갈 것”이라며 “일본 역시 핵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줄어드는 분위기인 만큼 중국의 위협 강도에 따라 핵잠수함 보유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핵잠수함 자체가 군비 경쟁을 촉발하지는 않지만 잠재적 핵 개발 능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역내 긴장 확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북한이 ‘핵 도미노’ 운운하며 경계감을 높이는 이유다. 그러나 북한의 양적·질적 핵 확장이 이미 임계점을 넘은 상황에서 전략자산 증강을 위한 군비경쟁은 불가피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은 “중·러는 핵잠수함을 이미 보유하고 있고, 북한도 핵잠수함 운영 계획을 밝혔다”며 “실질적 군비경쟁은 한국과 일본, 대만 등이 핵무장을 추진할 때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핵잠수함의 최우선 전략 목적은 북한 SLBM을 추적·무력화할 수 있는 능력 확보라고 설명했다. 특히 동해는 해저 지형이 복잡해 장기 잠항과 고속기동이 가능한 핵잠수함 없이는 북한 SLBM을 상시 감시하는 수중 체계를 구축하기 어렵다. 노무현정부 때 핵잠수함 건조사업(362사업) 단장을 지낸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북한의 SLBM 자체를 억제해 수중 발사를 못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핵잠수함 도입이 억제력 강화를 위한 순수 방어적 목적임을 분명히 하며 국제여론 관리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핵잠수함 운용은 어디까지나 급변하는 한반도 안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존중하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송태화 최예슬 박준상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