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폭염때처럼… ‘한파 휴식권’ 만든다

입력 2025-11-19 02:03

인천에서 33년째 쓰레기 수거 업무를 하는 장경술(59)씨는 “겨울엔 잠깐만 멈춰도 몸이 얼어붙는다”고 말했다. 작업하며 흘리는 땀과 쓰레기에서 나오는 오수로 몸, 장갑, 작업복이 다 젖는데 땀 배출이 중단되는 순간 겨울 칼바람이 모든 걸 꽁꽁 얼려버린다는 것이다. 장씨는 “매년 겨울철 뼈마디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 반복된다”며 “식당이나 편의점은 악취를 이유로 미화원들의 출입을 막아 지하주차장 같은 곳으로 들어가 몸을 녹이곤 한다”고 토로했다.

고용노동부가 이처럼 겨울 한파 속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사업주에게 노동자 보호조치 의무를 부여하도록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18일 파악됐다.

노·사·전문가 의견을 취합 중인 노동부는 12월 초까지 한파 기준규칙 초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후 12월 말 입법예고, 내년 초 국무조정실 규제 심사와 법제처 심사를 거쳐 내년 3월쯤 개정을 완료한다는 목표다.

현 시행규칙에는 냉동창고 등 저온 작업 환경에서의 한랭질환 예방 조치만 규정돼 있고 한파에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조치는 포함돼 있지 않다. 또 지난 6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면서 사업주에게 폭염·한파 시 노동자의 건강 저하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보건조치 의무가 부여됐지만 폭염에 대해서만 2시간마다 20분 휴식하라는 수칙이 법제화됐을 뿐 한파 관련 조항은 없다.


노동부가 마련 중인 한파 기준규칙에는 한파주의보·경보 발령 시 옥외 작업시간 조정 및 축소, 난방 가능한 실내 휴식 공간 확보, 보온·방수 기능이 있는 방한복 및 신발 지급, 한파특보 발령 시 체온 회복을 위한 휴식 제공 등이 포함된다. 사업주가 이런 내용을 이행하지 않으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이런 한파 기준규칙에 대해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은 엇갈린다. 노동계에선 작업시간 조정 및 휴식시간 부여 의무 등의 기준을 한파특보 시가 아닌 기온이 영하일 때로 낮추는 등 더 강력한 보호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일하는 항구 노동자의 경우 기온이 영하로만 떨어져도 작업에 어려움을 겪는 점 등을 근거로 든다. 반면 경영계에선 한파 산재와 관련한 최근 사망 통계가 없고, 재해자 수도 적다며 한파 기준규칙이 사실상 규제로 작용해 기업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추위는 손발 감각과 집중력을 떨어뜨려 미끄러짐·추락·끼임 등 사고를 늘리지만 이런 건 한파 산재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며 “체감온도 기준의 작업·휴식 스케줄, 한파기 사고·질환 통합 모니터링 등 ‘저온 스트레스’ 전반을 관리하는 체계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업주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조치를 명문화하려는 것”이라며 “합리적인 노사 중재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세종=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