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신분의 수사관이 마약범죄 조직과 범인을 수사·단속하는 ‘위장 수사’를 합법화하는 작업이 정부와 국회에서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법제화를 앞두고 검찰과 경찰이 위장 수사 신청 주체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막판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어 입법이 지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따르면 당초 여야는 이날 열린 복지위 법안심사 제1소위에서 신분 비공개·위장 수사를 법제화하는 내용의 ‘마약류관리법 개정안’을 논의하려 했지만 정부안 마련을 두고 검·경 간 이견이 정리되지 않으면서 상정이 불발됐다. 복수의 국회 관계자는 “내년 2월 전에는 다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장 수사는 가상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 위장 신분증을 가진 수사관이 마약류 범죄 정보를 수집하고, 피의자를 검거하는 수사 기법을 말한다. 현재 국회에는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지아 박준태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발의한 위장 수사 합법화 법안 3건이 발의돼 있다. 복지위 법안소위는 지난 8월 회의에서 관련 법안을 논의했었다.
현재 국회와 정부에선 온·오프라인 위장 수사 기간을 최대 3년으로 정하고, 긴급한 상황에선 수사 개시 후 3일 이내 사후 승인을 허용하는 쪽으로 현 마약류관리법을 개정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또 경찰과 특별사법경찰관이 검찰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검찰이 법원으로부터 허가받는 구조를 고려 중이다. 위장 신분을 이용한 과잉 수사를 통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위장 수사 신청 주체를 두고 검·경 간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법무부·대검찰청은 경위 계급 이상의 사법경찰관이 신청 주체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형사소송법상 영장 신청 주체도 이와 같으며 위장 수사의 중대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경찰은 신속한 수사를 하려면 실무자인 경사 계급 이하의 사법경찰리도 신청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두고 국회 안팎에선 검·경 간 주도권 다툼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초 위장 수사 규정을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을 단속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소관인 마약류관리법에 싣는 것부터 양측의 힘겨루기가 반영됐다는 지적도 있다. 학계에선 법무부 소관인 형사소송법이나 경찰청 소관인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명문화하자는 등의 의견도 나왔지만 양측이 부정적 입장을 보이면서 개별법 규정으로 정리됐다. 유사한 이유로 아동 디지털성범죄에 관한 위장 수사도 2021년 3월 성평등가족부 소관인 청소년성보호법에 명문화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나날이 은밀해지는 마약류 범죄 대응이 시급한 상황에서 검·경의 지엽적인 다툼 때문에 위장 수사 합법화가 지연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장응혁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수사 통제 방안을 두고 검찰은 영장주의에 기반한 외부 통제를, 경찰은 기관 책임자에 의한 내부 통제라는 시각 차이를 보이는 것”이라며 “마약류 범죄는 시급한 사회적 문제인데 ‘누가 신청할 수 있는가’를 두고 다투는 건 결코 본질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