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은 하나님을 믿는 자의 신앙고백이자 사랑의 마지막 실천입니다. 나 자신을 드릴 때 세상을 살릴 수 있습니다.”
강치영(62) 한국장기기증협회장은 1990년대 초 장기기증이 낯설던 시절부터 생명 나눔의 씨앗을 뿌려온 한국 장기기증 운동의 개척자다. 최근 부산 부산진구 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강 회장은 “세속화 위기 속 교회가 펼칠 실천운동은 장기기증”이라며 “장기기증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행위다. 한 사람의 생명은 지구보다 무겁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현재 부산북교회 장로로 34년간 장기기증 운동에 힘써 왔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 영향으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다. 흰돌산기도원에서 윤석전 목사를 만나 신앙의 결정적 전환점을 맞았다고 한다. 강 회장은 “당시 하나님께서 생명나눔운동으로 부르셨다.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로 된 일”이라고 말했다.
이후 구체적 사역은 92년 부산에서 시작했다. 당시 장기려 박사와 김용태 부산시 약사회장 등 33명의 인사들과 함께 ‘사랑의장기기증운동 부산본부’를 창립했다. 90년대까지 한국사회는 유교 경전인 효경(孝經)이 말하는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 관념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의료계 종교계 언론과 협력해 인식 전환에 앞장섰고 때로는 장기 밀매꾼으로 오해받아 경찰 조사를 받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뚝심 있는 그의 행보는 2000년 2월 국내 최초로 장기기증 및 이식 관련 법률(장기이식법) 제정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를 통해 정부 차원의 기증 구득기관(현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이 설립돼 장기기증 제도가 제도화되도록 했다. 2000년엔 부산 최초의 무료 혈액투석병원인 ‘사랑의 의원’과 ‘사랑의 인공신장실’을 설립, 20년간 110만회(450억원 상당)의 무료 투석과 약품 지원을 이어왔다. 2008년에는 중증 만성신부전증 환자와 말기암 환자를 위한 무료 숙식시설 ‘사랑의 쉼터’를 세워 무료 의료·생활 지원을 제공했다. 세계 최초로 한국장기기증학회도 창립해 장기기증의 사회적 거버넌스 연구를 이끌었다.
강 회장은 지금까지 103구의 시신을 해부학교실에 기증했다. 자신과 가족 또한 사후 인체 기증에 서약했다. 그는 “한 명의 장기기증으로 환자 6~8명을 살릴 수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이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믿음으로 병든 자와 함께 울고 웃자”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정홍준 객원기자 jong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