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에서 모든 방향으로 건널 수 있는 ‘대각선 횡단보도’ 설치가 뚜렷한 안전 효과를 내고 있다. 서울시와 한국도로교통공단이 2012~2023년 동안 설치된 217곳을 분석한 결과, 교차로 교통사고는 18.4%, 횡단보도 보행자 충돌 사고는 절반으로 감소했다. 교통 체계만 효율적으로 개선해도 교통안전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결과다. 교통안전의 핵심은 거창한 공사가 아니라 신호와 동선을 보행자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러한 시스템을 적극 확충해 촘촘한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이 같은 변화는 다른 정책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신호등을 없앤 회전교차로는 차량이 측면을 들이받는 사고가 크게 줄어 교통사고 감소와 지체 해소에 효과적이다. 최근 확산되는 스마트 횡단보도 역시 감지센서와 LED 경고등만으로 야간 보행자 사고를 줄이는 효과가 나타났다. 우회전 전용 신호등도 주목할 만하다. 보행자 신호가 파란불일 때 우회전을 금지한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차량 신호체계가 복잡해 현장에서는 ‘눈치 보기’가 반복됐다. 스쿨존과 생활도로에서 사고가 잦았던 이유다. 우회전 신호는 이 문제를 보행자와 차량의 움직임을 완전히 분리해 해결했다. 보행신호의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잔여시간 표시 신호등 역시 보행자의 무리한 도로 진입을 줄이고, 운전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충돌 위험을 낮춘다. 신호와 속도, 이동 동선을 다시 설계하는 것만으로도 교통안전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는 사실이 여러 사례에서 확인되고 있다. 스쿨존, 역세권 등부터 우선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보행자 중심의 교통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도시의 기본 가치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보행자 사망률이 높은 국가다. 교통체계를 효율화하려는 다각적 노력과 정책 확충이 이뤄질 때 도시의 안전 수준은 한 단계 더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