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인공지능(AI) 경쟁은 두 강대국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대한 변수가 됐다. 미국은 엔비디아가 독점한 첨단 AI 칩, 오픈AI의 챗GPT 등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AI 모델로 확고한 우위를 지키고 있다. 중국은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며 국가 총동원 체제를 바탕으로 무서운 속도로 미국을 추격하는 중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이어 아마존웹서비스(AWS)도 엔비디아 AI 칩의 중국 수출을 제한하는 법안을 지지한다는 뜻을 미 상원에 비공식적으로 전달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엔비디아의 최대 고객이다. ‘게인 AI법’이라 불리는 이 법안은 무기 금수 대상인 국가에 AI 칩을 수출하기 전 미국 내 수요를 우선 충족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엔비디아와 최대 고객사 사이에 불거진 드문 갈등이라며 AI 경쟁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지난 9월 해당 법안이 발표되자 엔비디아 대변인은 “우리는 전 세계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미국 고객을 절대 배제하지 않는다”며 “이 법안은 주류 컴퓨팅 칩을 사용하는 모든 산업에서 전 세계적인 경쟁을 제한하게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0일 ‘모든 것을 재정의하게 될 AI 신냉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AI 신냉전의 승자는 미국과 중국 중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해 심층적으로 조명했다. WSJ는 미·중의 AI 경쟁이 단순한 경제전쟁이 아니라 ‘인류 사회의 규칙을 누가 설계하게 될 것인가’로 확장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WSJ에 따르면 AI 혁신이 지난해 오픈AI와 구글 등 미국 기업을 중심으로 급속히 전개되면서 중국 지도부는 불안함과 조바심에 휩싸였다고 한다. 지난해 봄 중국은 사실상 전방위 총동원령에 가까운 압박과 지원을 동시에 가했다.
중국 AI 업계 관계자는 “한 달 동안 10개 부처가 전화를 걸어 원천기술 개발을 독촉했다”고 WSJ에 토로했다.
그로부터 9개월 뒤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주목받는 성능의 모델 ‘R1’을 내놓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중국에도 마침내 자랑스러워할 만한 모델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는 큰 격차로 우위를 점하고 있던 미국에 강한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최첨단 칩으로 방어하는 미국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일 파이낸셜타임스 주최 강연에서 “AI 경쟁에서 중국이 미국을 제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규제 완화와 에너지 비용 절감 정책을 통해 현지 기업들이 저렴하게 대체 AI 칩을 운용하고 있는 사실을 거론하며 미국이 AI 산업에서 우위를 계속 유지하려면 개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CEO의 답답한 심정이 반영된, 과거에 비해 훨씬 단호해진 경고였다. 이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엔비디아의 첨단 블랙웰 칩은 미국 외에는 아무도 쓰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한 직후 나왔다.
WSJ는 지난 7월 ‘중국, 글로벌 AI 경쟁에서 미국 우위를 빠르게 잠식하다’라는 기사에서 미국이 중국의 미국산 반도체·기술·자본 접근을 강력히 제한해 왔지만 그 여파로 중국이 미국 의존도를 최소화한 AI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저렴하면서도 성능이 비슷한 중국산 AI 모델이 확산될수록 미국이 글로벌 AI 질서를 주도할 힘이 약해진다고 우려한다. 실제 중국 AI 신흥강자 ‘즈푸’는 동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 국가들에 AI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UC버클리의 AI 정책 연구자 리트윅 굽타는 “중국이 글로벌 AI 생태계에 계속 의존해야만 미국이 이를 통제할 수 있다”며 “완전히 독자 체계가 되면 중국의 기술, 목표, 전략을 들여다볼 수단을 잃게 된다”고 우려했다.
물량공세로 추격하는 중국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이 미국의 최고 수준 제품과 맞먹는 AI 칩을 생산하려면 10년은 더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는 각급 지방정부와의 조율을 통해 지방 기업 수천곳과 협력하며 첨단 반도체 기술을 개발해 왔다. 여기에는 최대 100만개의 칩을 묶어 계산 능력을 끌어올리는 시스템, 이른바 ‘스웜(Swarm·벌떼) 전략’도 포함된다. 화웨이는 이 방식이 전력 소모가 더 크기는 하지만 엔비디아의 최고급 시스템과 맞먹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내몽골과 같은 지역에 초대형 컴퓨팅 클러스터도 구축하고 있다. 이 지역은 풍력·태양광이 풍부해 값싼 전력을 대량 공급할 수 있다. 중국은 이들 수백개 데이터센터를 하나의 연산 자원으로 묶는 ‘국가 클라우드’를 2028년까지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AI 학습과 활용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력망에도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美 앞서가도록 놔두는 건 中의 전략?
중국은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이 먼저 앞서가도록 초기 우위를 허용한 뒤 시간이 지나 노하우가 쌓이면 빠르게 추격한 전력이 있다. 중국 엔지니어들이 만든 틱톡이 그 예다. 틱톡은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 시장을 사실상 재편했다.
전문가들은 어느 나라가 최종적으로 AI 주도권을 가져갈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또 이번 경쟁의 승패가 단순히 ‘누가 더 많은 돈을 쓰느냐’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AI 칩 수출 통제를 담당했던 리스 맥과이어는 “우리의 우위는 수년이 아니라 몇 개월의 차이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