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현실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
의구심 가진 용감한 사람들이 바꿔나간다
의구심 가진 용감한 사람들이 바꿔나간다
용감하다는 이유로 조롱받던 이들을 본 적이 있다. 3년 전, 나는 출판문화와 창업을 지원하는 공공의 공간을 운영하고 있었다. 1인 출판사와 디자이너, 편집자, 일러스트레이터 등 출판 관련 창작자를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었다. 10여년간 다양한 책을 만들면서 현장에서 버텨 왔던 터라 내게는 이런저런 잔기술들이 있었고, 눈을 반짝이는 동료들과 그것들을 나누는 것은 나름대로 즐거웠다.
그러나 속수무책이었다. 조롱받는 동료들 앞에서 그런 기술 따위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입주자 중에는 2명의 여성 연구자로 구성된 팀이 있었고, 그들은 여자야구의 역사와 현황, 그리고 배제와 차별을 분석하는 연구서 ‘외인구단 리부팅’을 첫 책으로 출간했다. 당시 제작에 대한 조언을 위해 미리 인쇄용 파일을 받아보고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주장은 뜨겁고 밀도가 높았으며, 수많은 문헌적 근거가 뒷받침하고 있었다. 이런 책에 대해 나는 무슨 조언을 할 수 있을까. 고작 내용이 많으니 잔가지에 해당하는 것들은 다음 책으로 출간하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대충 꺾어서 화단에 꽂아 두면 곧 멋진 나무로 자라날 거라고.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반드시 필연적 형태가 아니라는 점을 배우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 책은 스포츠 제도 연구를 했던 2명의 경제학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현대인은 만들어진 제도를 기본값으로 생각한다.” 왜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는 빈부 격차는 당연하며, 약한 자의 터전에 강한 자들이 폭탄을 쏟아붓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세계에 산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언제나 용감한 이들이 있었고, 그들이 자신이 사는 세계에 의구심을 지니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온몸으로 돌격할 때 세상은 조금씩 바뀐다. 강고해 보이는 지금의 세계 역시 상당 부분 우연의 구성물이며, 크고 작은 용기가 그것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운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즐기던 스포츠인 야구가 미국을 중심으로 ‘백인 남성의 스포츠’로 변질됐고, 그 결과로 여성과 소수자들이 그라운드에서 배제됐다는 주장과 자료에는 깊은 설득력이 있었다. 또한 책에 소개된 여자야구 선수들과 행정가들의 이야기는 자못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자신들을 위한 리그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매일 공을 던지고 러닝을 하는 이들의 마음은 과연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대체 그 책의 어떤 부분이 몇몇 남자들을 그토록 분노하게 했던 걸까. 한 ‘래커 유튜버’와 그의 악성 팬들이 이 여성 연구자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자신의 얼굴은 선글라스와 헬멧으로 살뜰하게 가린 그는 유튜브 섬네일에 두 연구자의 얼굴을 그대로 노출하며 조롱을 시작했다. ‘성별의 문제가 아니며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150㎞의 강속구만 던진다면 구단들이 앞다퉈 데려갈 것’이라는 그의 말은 사실 비판할 가치조차 없는 왜곡된 능력주의다.
만약 그렇다면 권투와 레슬링에는 슈퍼 헤비급만 존재하면 될 것이고, 야구팀은 미국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 올스타 두 팀만 있으면 될 것이다. 아니, 모든 선수가 오타니 쇼헤이를 주인공으로 한 청춘 영화의 엑스트라로 살아가면 되겠다. 하지만 스포츠가 과연 그렇게 천박한 것이던가. 우리는 고작 누가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지 알기 위해 가슴을 졸이며 경기를 기다리는가.
시간이 지났다. 그 유튜버는 결국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혓바닥 살인마’라는 더러운 이름을 얻었다. 반면 책에 등장했던 여자 야구선수인 김라경과 박민서, 그리고 박주아와 김현미는 지금 72년 만에 부활한 미국 여자프로야구리그(WPBL)의 드래프트를 기다린다. 이틀 후의 생중계에서 결국 그들의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고 해도, 이 용감한 선수들은 우리 생활인의 영웅일 것이다. 그리고 용기는 사람과 사람을 통해, 책과 이야기를 통해 끝없이 이어진다.
김현호 사진비평가·보스토크 프레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