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꽃밭을 그냥 지나쳐 왔네

입력 2025-11-19 03:04

‘꽃밭을 그냥 지나쳐 왔네/ 새소리에 무심히 응대하지 않았네/ 밤하늘의 별들을 세어 보지 못했네/ 목욕하면서 노래하지 않고 미운 사람을 생각했었네/ 좋아 죽겠는데도 체면 때문에 환호하지 않았네/ 나오면서 친구의 신발을 챙겨 주지 못했네/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잊은 시간이 있었네’

정채봉님의 시 ‘오늘 내가 나를 슬프게 한 일들’이다. 나를 슬프게 한 일들은 이어진다.

바람이 건넨 인사를 들었지만 답하지 않았네. 저녁노을의 붉은빛에 잠시 멈추지 못했네. 휘영청 밝은 달을 올려다보지 않고 휴대폰 불빛만 바라봤네. 길모퉁이 작은 들꽃의 이름을 궁금해하지 않았네. 낙엽 밟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이어폰을 꽂고 걸었네. 꾹꾹 눌러쓴 손편지를 받고도 무심한 메시지로 답했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 뛰어오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못했네. 아이의 해맑은 웃음에 함께 웃어주지 못했네. 배달원의 수고에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네. 친구의 근심 어린 표정을 보고도 모른 척 지나쳤네. 내 이야기만 실컷 하고 상대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았네. 작은 부탁을 하는 후배에게 곤란한 표정부터 지었네. 하루의 끝에 감사하는 대신 내일의 걱정을 앞세웠네.

하나님은 오늘도 기적을 보내 주시고 나를 웃게 할 천사도 보내주시고 내가 도와주어야 할 천사도 보내 주셨다. 오늘 나를 기다리던 이 모든 순간을 소홀히 한 것은 죄일까.

하와이 사람들은 만나거나 헤어질 때 ‘알로하(aloha)’라고 인사한다. “나는 지금 신의 호흡 앞에 있습니다”라는 의미이다. 나를 비롯하여 내가 만나고 있는 당신 그리고 저 꽃과 나무와 돌, 바닷가의 모래조차도 하나님이 창조한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이다.

‘추파(秋波)’란 가을날의 맑고 잔잔한 물결처럼 아름다운 눈짓을 의미한다. 비단 가을뿐만이 아니다. 겨울이 오고 봄이 오고 여름이 와도 온 천지는 주님이 주신 추파투성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당 안에서만 찾는다면, 기도 시간이나 성경을 펼쳐 놓았을 때만 그분을 의식한다면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일상의 모든 순간에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호주의 신학자 마이클 프로스트의 명저 ‘일상, 하나님의 신비’(Eyes Wide Open: Seeing God in the Ordinary)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초자연적 차원과 그 권능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차원만 추구하다 보면 잃는 것이 너무 많지 않을까.(중략)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는가. 부서지는 파도 속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가. 갓 태어난 아기의 해맑은 눈동자 속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가. 장미 한 송이 혹은 영화나 책에 등장하는 인물, 아름다운 노래?계절의 변화 가운데서는. 친구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또한 맛있는 음식과 감미로운 대화에서 그분을 맛보지 않는가.(중략) 우리의 눈을 열어(중략) 일상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자.”

아침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 지나가는 이의 따뜻한 미소, 누군가의 작은 친절, 힘들어하는 이웃의 눈빛.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건네는 음성이다. 하늘의 시인 다윗은 이 일상의 음성을 들었다. 그래서 시편 8편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나도 이런 노래를 부르고 싶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시 8:1)

한재욱 강남비전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