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에서 ‘군 자살예방 정책 세미나’가 열렸다. 여기서 필자는 군 자살예방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발표하며 자연스럽게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갔다. 바로 “군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자살예방 정책을 논의할 때 정책과 대응 전략 등에 대한 논의는 많았지만 군에 근무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생략됐기 때문이었다.
군은 늘 우리 사회 가까이에 존재했지만 평소에는 외딴섬처럼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필요할 때는 영웅으로, 필요 없을 때는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이중적 인식 속에서 군인은 묵묵히 국가와 민족을 지켜왔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무관하게 군인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국가 보위와 국민 보호라는 사명이다.
군 조직은 일반적인 합리성의 틀을 넘어서는 ‘초합리적’ 조직이다. 명령에 따라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은 효율이나 보상으로 설명될 수 없다. 적과 싸워야 하지만, 그 적 또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넘어서는 정신적 태도를 요구받는다. 이런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군은 장병들에게 군인정신을 요구한다. 이는 단순한 전투를 위한 정신이 아니다. 명령을 수행하고, 공동체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정신적 구조다.
군인정신은 자살예방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위해한 적으로부터 자신과 동료와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는 점에서 생명존중의 정신이고, 국경을 지켜 각자가 성장을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려는 극한의 노력이다. 그렇기에 군인 자살을 막기 위한 핵심은 이 군인정신에 있다. 군인정신은 어떤 조건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가능한 행동 대안을 찾으며, 이를 실천으로 옮겨 자신과 공동체를 지키는 정신이다. 이는 자살로 이어지기 쉬운 무의미 무기력 무행동 단절의 흐름을 반전시키는 힘을 갖는다.
군에서 배운 심리적 자원은 전역 후에도 유용하다. 군인정신이 개인에게 긍정적 사고와 공동체의 중요성을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전역 후에도 사회에서 자살 예방에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군인정신에 기반한 자살예방 체계 구축은 단지 군을 위한 일이 아니다. 사회 전체의 생명 가치를 높이고, 군과 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길이다. 군은 군인정신을 바탕으로 정신전력을 강화하면서 자살도 예방하는 전략을 다층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단편적 교육 프로그램이나 군만의 접근법을 넘어서야 한다. 지휘관의 리더십부터 현장의 자살예방 상담 서비스까지 전체 국민 생태체제적 관점에서 진행해야 한다.
군인은 복무 전후까지 모든 시간에 이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들은 ‘군인국민’이다. 이들의 생명과 가치를 지키는 체계를 만드는 것은 군의 책임이자 사회가 함께 지는 책무다. 그래서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과 연계해 군에 머무는 순간만이 아니라 입대 전과 전역 후를 포함해 시계열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군인의 생명을 군에서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전역 후까지 이어지는 ‘가치 연결망’을 형성해 군인의 삶과 가치를 지속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
동시에 군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군인정신을 통해 장병들이 삶의 의미를 찾고, 긍정적 사고와 행동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돕고 있는가. 전역 후에도 군에서 배운 심리적 자원을 사회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있는가. 군이 군인정신을 바탕으로 생명존중의 정신을 사회에 전파하고 공동체의 존엄과 가치를 확산시킬 때, 군내 자살을 예방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 군인이 국가와 공동체를 지키듯, 사회는 이제 군인의 생명과 가치를 지키는 일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차명호 평택대 상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