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산타아나 시티 교도소 사역을 시작하던 날, 아내와 목사님 두 분과 함께 교도소를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시설과 환경이 가장 좋다는 교도소였다. 컨트롤타워의 조작으로 무거운 문이 열렸다.
먼저 여자 재소자 동에 들어갔다. 1·2층 수감방은 개미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잠잠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우리를 작은 문틈 사이로 바라보는 얼굴들이 보였다. 교도관이 예배 안내 방송을 했다.
다시 무거운 문이 열리자 여자 재소자 여럿이 예배실로 들어왔다. 한 사람 한 사람 악수하며 인사하는 중 한국인 한 분을 만났다. 중년의 여성이었는데, 우리를 보고 눈물을 훔치며 인사했다. 내 가슴도 두근거렸다. 열 명 남짓 재소자들은 필리핀 베트남 흑인 중국 멕시코 등 다양한 지역 출신이었다. 영어를 잘 못하는 이들이 많아 당황스러웠다.
나는 준비한 대로 영어로 설교해야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리와 인사한 한국 여성이 내 영어 설교를 스페인어와 중국어로 통역하기 시작한 것이다. 찬양하고 기도할 때 재소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아멘, 아멘”으로 화답했다. 첫 예배가 끝나고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인사한 뒤 남자 재소자 동으로 이동했다. 마음은 주님 주신 은혜로 가득 찼다. 그곳에, 생각지도 못한, 영어·스페인어·중국어를 감당할 수 있는 한인 동역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놀라웠다. 여호와 이레. 그렇게 사역은 시작되었다.
한 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하나님은 빌 콕스 목사를 만나게 하시고, 7일의 기도로 마음을 준비하게 하시고, 동역자들을 준비시키셨고, 교도소 안에 4개 국어가 가능한 권사님까지 예비해 두셨다. 부족한 나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단 한 가지, 순종이었다.
쫓아가는 사역, 그것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미국 산타아나 시티 교도소에서 나는 다국적 이민 재소자들을 만나 섬겼다. 그중 한 명이 엘살바도르 출신 형제, 에드거 보리스였다. 그는 영어를 잘했고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성경 공부에 빠지지 않았다. 때때로 교도소가 ‘록다운(lockdown)’ 되어 외부 활동을 제한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혼자라도 꼭 성경공부 자리에 나왔다.
우리는 점점 마음을 나누게 되었다. 그는 미국에서 자동차 정비사로 일하며 큰 보디숍(자동차 수리 공장)을 운영했었으나 마약에 빠져 범죄에 연루된 과정을 들려주었다. 그는 결국 미국에서 추방돼 엘살바도르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나는 그를 주님께 인도하고 말씀을 가르쳤다. 그는 추방 직전에 이렇게 고백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저도 다른 이들의 영혼을 위해 헌신하며 주님의 일을 하고 싶습니다.”
추방된 지 6개월쯤 후 그는 미국 LA에 남아 있던 자신의 아내를 통해 “엘살바도르로 와 주셨으면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나와 아내는 망설임 없이 그를 찾아가기로 했다. 엘살바도르는 중남미 국가 중 유일하게 미국 달러를 통화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공항은 열악했지만, 보리스가 우리를 마중 나왔다.
정리=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