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발언에 강력 반발하고 있는 중국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이례적으로 비판하고 일본 영화의 중국 내 개봉을 잇달아 취소했다. 일본은 외무성 간부를 중국으로 급파해 사태 수습에 나섰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외교부는 14일 일본 정부가 독도 주권에 대한 부당한 주장을 선전하는 영토주권전시관 공간을 확장한 것에 강한 항의를 표했는데 어떻게 보는가’라는 관영 매체 질의에 “그 보도에 주목했다. 최근 일본의 많은 악성 언행은 주변 국가의 경계와 불만, 항의를 유발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일본이 침략 역사를 심각하게 반성하고 평화의 길을 걷기를 고수하며 실제 행동으로 아시아 이웃 국가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독도 문제에 대해 말을 아껴온 중국 정부와 기존 태도와 대비된다.
중국은 일본 영화도 타깃으로 삼았다. 중국 지무신문에 따르면 오는 22일과 다음 달 6일 개봉 예정이던 일본 영화 ‘일하는 세포들’과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작열하는 떡잎마을 댄서즈’의 개봉이 취소됐다. 배급사 측은 “언제 다시 개봉할지 알 수 없다. 예매한 영화표는 환불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일본 영화의 연내 개봉도 불투명해졌다.
블룸버그통신과 대만 뉴토크신문은 중국이 일본에 대한 최소 네 가지 경제적 보복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자국민의 방문 자제 권고를 통한 일본 관광 규제와 문화 콘텐츠 수입 제한에 시동을 건 데 이어 희토류 수출 통제와 중국 내 일본 기업에 대한 반독점 조사 카드도 동원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이 본격적으로 경제 보복에 나서면 일본 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경제학자 기우치 다카히데의 추산에 따르면 중국의 여행 자제 권고만으로도 일본 경제는 최대 2조2000억엔(20조7500억원)의 피해를 입고 국내총생산(GDP)이 0.36% 포인트 감소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화하면 전체 희토류의 70% 이상, 중희토류의 9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는 일본은 전자·자동차 산업 등에서 심각한 위험에 직면할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일본이 군국주의의 전철을 밟을 위험성을 우려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며 “대만 문제로 일을 벌이면 화를 자초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는 “오키나와의 법적 지위는 미정이고 일본의 고유 영토도 아니다”며 역공에 나섰다. 1943년 카이로선언 등에서 오키나와의 전후 일본 귀속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이 근거다.
이날 가나이 마사아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중국을 방문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가나이 국장이 류진쑹 외교부 아시아국장을 만나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과 쉐젠 오사카 주재 중국 총영사의 소셜미디어 글을 둘러싼 양국 간 대립의 진정을 모색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7일 중의원에서 ‘무력이 동반된 대만 유사시’를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위기 사태’로 볼 수 있다고 밝혔고, 쉐젠 총영사는 이튿날 “더러운 목을 벨 수밖에 없다”는 글을 올려 양국 간 갈등이 격화됐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