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사까지 AI 생태계 조성… 한국 ‘마더 팩토리’로 키운다

입력 2025-11-18 00:11

국내 4대 그룹이 16일 발표한 800조원 이상의 대규모 국내 투자 계획의 핵심은 한국을 ‘마더 팩토리’(중심 생산기지)로 삼아 산업 전반에 인공지능(AI)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 투자를 늘리더라도 핵심 제품 생산과 첨단 기술의 중심 거점은 국내에 구축함으로써 산업 공동화를 막고 제조업 경쟁력도 동반해서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 SK 현대차 LG 등 4대 그룹이 전날 내놓은 국내 투자계획은 제조 분야에 AI 인프라를 확산하고, AI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각 기업의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가 평택캠퍼스에 가로 650m, 세로 195m 크기의 ‘메가 팹’(초대형 공장) 5공장(P5) 건설에 착수하고 SK그룹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완공 때까지 600조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힌 것도 AI 산업의 핵심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잡으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SK는 국가 전략 프로젝트인 차세대 전력반도체(SiC) 기술개발 사업에도 참여 의사를 나타냈다. 삼성과 SK, 현대차가 전남 해남과 울산, 경북 구미 등에 최소 5곳의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비수도권 지역 AI 인프라 투자 성격이다.

현대차그룹은 특히 자율주행 등 향후 피지컬 AI 구현에 대비해 피지컬 AI 애플리케이션 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로봇 생태계 구축을 염두에 둔 로봇 완성품 제조 및 파운드리 공장 조성 계획까지 밝혔다. 차량 내 AI·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자율주행·로봇 등 AI 역량을 고도화하고 국내 공장을 AI·전동화 중심의 마더 팩토리로 재편하려는 포석이다.

이들 그룹은 국내 AI 생태계 구축 차원에서 협력사들과의 상생 방안도 대거 내놨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기존 자동차 부품 협력사의 로봇 부품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1차 협력사의 올해 대미 관세 전액을 지원하기로 했다. LG그룹도 지금까지 추진해온 산업현장의 AI 적용을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협력사의 설비 자동화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전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협력사의 역량이 함께 올라가야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도 용인반도체클러스터에 협력업체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을 지원하는 ‘트리니티 팹’을 정부와 함께 구축하고 있다. 삼성도 중소·중견 협력사의 스마트 공장 구축을 지원하고 설비투자 등에 필요한 자금을 저리로 대출해왔다.

재계 관계자는 “주요 대기업들이 해외 투자 확산세 속에서도 국내 AI·전략산업 육성 계획을 내놓으면서 산업 공동화 우려는 일정 부분 해소됐다”며 “기업들이 계획대로 투자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에너지·노동 등의 비용 부담을 완화하고 규제를 해소하는 등 적극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선 허경구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