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주도 수원지검장 사의… 검사장 줄퇴진 가능성 거론돼

입력 2025-11-17 18:46 수정 2025-11-17 23:56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7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전국 보호기관장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 장관은 이날 오전 출근길에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와 관련한 여권 대응에 대해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와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대장동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평검사로 사실상 강등하는 강경 조치를 검토 중인 가운데 검사장 집단 성명 발표를 이끌었던 박재억 수원지검장이 17일 사의를 표했다. 여당과 법무부의 강경대응 검토에 대한 항의 차원으로 풀이된다. 나머지 검사장들의 동반 퇴진 가능성마저 거론되면서 정권과 검찰 간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박 지검장은 대검찰청과 법무부에 사의를 표했다. 지난 10일 전국 일선 검사장 17명과 함께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항소 포기 결정 경위를 밝히라는 취지의 성명을 낸 지 일주일 만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박 지검장이 성명을 낸 검사장 중 가장 선임인 만큼 책임지겠다는 의미로 사의를 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당이 ‘검사 파면 법안’을 발의하고 법무부까지 검사장들의 강등 조치를 검토하고 나서자 후배 검사장들을 대신해 사의를 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이날 예정됐던 마약범죄 전담 합동수사본부 출범도 연기됐다. 박 지검장은 마약합수본 초대 본부장으로 사실상 내정된 상황이었다.

검찰 안팎에서는 다른 검사장들의 동반 사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조심스레 제기된다. 검찰 사정을 잘 아는 한 법조 관계자는 “항소 포기라는 검사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항명’ 운운하는 현 상황에 회의감을 느끼는 검사장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 박 지검장 사의 표명 사실이 알려진 직후 송강 광주고검장도 대검과 법무부에 사의를 표했다. 다만 송 고검장은 이번 항명 사태와 직접적 관련은 없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 장관은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여권의 강경대응 검토와 관련,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와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장 강등 검토에 대해 검찰 내 반발 우려가 나온다는 질문에는 “특별히 그런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이날 공식 첫 출근을 한 구자현 검찰총장 권한대행(대검 차장)도 구체적 언급을 피하면서 조직 수습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법무부와 대검찰청 수뇌부가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하는 사이 검찰 내부의 반발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공봉숙 서울고검 검사는 이날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 “업무상 위법 또는 부당해 보이는 상황에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는 공무원들에게 징계하고 처벌하고 강등시키겠다고 한다”며 “다수의 정치인이 대놓고 저런 어처구니없는 겁박을 하고, 그 겁박을 현실화할 법을 만들겠다면서 눈을 부라리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항소 포기 사태의 전말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한 검찰 간부는 “모든 팩트가 확인되고 상황이 마무리돼야 하는데 이대로라면 몇 년 뒤에 또 수사한다면서 진실 공방을 이어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한주 박재현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