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형서 도전자로… 엔씨소프트의 2막이 열린다

입력 2025-11-19 00:10
올해 게임전시회 ‘지스타’의 메인스폰서로 참여한 엔씨소프트는 대규모 신작 시연대(위쪽)와 초대형 파노라마 돔 상영관(아래쪽)을 운영하며 게이머의 눈길을 끌었다.

엔씨소프트가 다시 한번 출발선에 섰다. 30년 가까이 한국 온라인게임 역사를 이끌어 온 회사지만, 이번에는 ‘맏형’이 아니라 ‘도전자’의 마음가짐이라는 점이 다르다. 스스로 쌓아 올린 성과인 동시에 후폭풍으로 돌아온 과거의 관행을 마주하면서다. 엔씨소프트는 새 게임사를 창업하듯 회사를 처음부터 다시 짓겠다는 각오를 내비치고 있다.

최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지스타 2025 현장은 변화의 의지를 선명하게 드러낸 무대였다. 엔씨소프트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행사 메인 스폰서를 맡아 대형 전시관을 꾸렸다. 지난 14일 국민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이성구 부사장은 “근본적으로 잘못한 부분이 많았다”면서 “이제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반성의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이성구 엔씨 부사장(가운데)은 "30년 회사 업력의 관행적 태도를 반성하고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변화와 도전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리니지로 흥한 엔씨소프트는 어느 순간 리니지만 남은 회사가 됐다. 엔씨는 캐주얼 배틀로얄 ‘배틀 크러시’, 퍼즐 게임 ‘퍼즈업: 아미토이’ 등으로 장르 다변화를 시도했지만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극악한 확률형 아이템을 넣지 않았음에도 엔씨 로고만 보고 이용자들이 등을 돌리는 냉담한 반응에 부딪혔다. ‘리니지’ 시리즈가 남긴 과금 이미지와 소통 부재의 관행이 누적되며 “운영도 오만하고 이제는 게임도 못 만든다”는 평가까지 감수해야 했다.

엔씨소프트는 새로운 장르 개척을 위해 다시 도전자의 자세로 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변화의 최전선에는 모바일 리니지 시리즈의 주역으로 알려진 이 부사장이 서 있다. 이 부사장은 “이대로는 글로벌 도전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다고 했다. 지스타 현장에서 트리플A급 신작 ‘호라이즌 스틸 프론티어’ 총괄 프로듀서로 전면에 나선 그는 “우리가 쌓아온 잘못을 인정하고 인식을 바꾸려면 먼저 우리가 달라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PvP·과금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PvE·협력 중심,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착한 BM’을 지향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못 박은 것도 이때다.

엔씨가 ‘호라이즌 스틸 프론티어’를 공개한 직후 협업 중인 소니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심도 있는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전투와 폭넓은 플레이어 자유도를 특징으로 하는 고급 MMORPG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게임을 평가했다. 이 부사장은 원작 팬덤의 기대와 경계가 뒤섞인 상황 속에서 “호라이즌을 엔씨가 망쳤다는 말은 절대 듣지 않겠다”는 각오로 개발에 임하고 있다.

지스타에서 공개된 ‘아이온2’ ‘신더시티’ ‘리밋 제로 브레이커스’ ‘타임 테이커즈’ 등 신작 라인업은 공통적으로 글로벌 동시 론칭을 목표로 한다. 그동안 국내 매출에 기대어 리니지식 모델을 반복해 온 구조를 탈바꿈하겠다는 의지가 서려 있다. 이후에는 서브컬처, 퍼즐, TCG 등 새로운 장르를 자체 개발하고 외부 개발사와 협업하는 퍼블리셔 역할까지 넓히겠다는 복안이다. “개발자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능력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이 부사장의 조직 문화 개편 의지도 뚜렷하다.

결국 관건은 말이 아니라 결과다. 엔씨의 변신은 단지 한 작품의 성공 여부를 넘어 회사의 존립 방식을 바꾸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엔씨 경영진 사이에서는 “글로벌 도전은 구호만으로는 안 되고, 시스템과 게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다. 한때 ‘전쟁·과금 중심’의 상징으로 불리던 회사가 다시금 이용자 신뢰를 얻으려면 새로운 작품이 그 변화의 증거가 되어야 한다. 이 부사장은 “마음에 안 들어도 개발력은 좋다는 평가는 최소한 받아야 한다”며 “유저들이 인정하는 좋은 게임을 결과물로 보여주면 엔씨가 변하고 있다는 걸 언젠가 알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도전이 하나의 실험으로 끝날지, 아니면 한국 대표 게임사의 ‘2막’을 여는 서막이 될지는 이제 온전히 엔씨의 몫이다.

글·사진=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