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재 목사의 후한 선물] 머릿돌의 영성

입력 2025-11-18 03:05

또 한 번 수능이 끝났다. ‘드디어 해방이다’ 외치는 학생도 있겠지만 ‘내 인생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탄식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같은 시험을 치렀지만 결과나 만족감은 같을 수 없다.

2018년 한 기독교 매체가 전한 소식이다. 많은 교회가 수능 당일 아침에 기도회를 여는데 우리들교회만 수능이 끝난 후 저녁에 기도회를 연다는 것이다. 이른바 ‘붙회떨감 수능 기도회’. 즉 ‘붙으면 회개하고 떨어지면 감사하자’는 기도회다. 당시 교회에서 보도자료를 낸 것도 아닌데 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이 기도회는 지난주에도 여전한 방식으로 열렸다.

한 청년이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았다. 프로젝트가 98% 진행됐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다른 부서로 발령받았다. 거의 완성한 일을 동료에게 인계하며 ‘왜 내게 이런 날벼락이 왔을까’라고 생각했다. 더 기가 막힐 일은 그다음이었다. 얼마 후 그 동료가 이 프로젝트로 회장 표창을 받은 것이다.

보통이라면 분노하거나 실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날마다 큐티하며 말씀을 묵상해 온 청년은 달랐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남이 보든지 보지 않든지 성실해야 한다고 믿었다. 흔들림 없이 주어진 일에 충실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상사가 더 중요한 프로젝트에 그를 추천했다.

시편 기자는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시 118:22)라고 노래한다. 머릿돌은 건축자의 이름이 새겨지는 마지막 완성품이다. 그런데 머릿돌의 시작이 버림받은 돌이라고 한다. 진정한 머릿돌이 되려면 먼저 버려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대속적 희생이 이 과정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일이 잘될 땐 “바쁜데 어떻게 교회에 갑니까”라고, 안 될 땐 “안 되는데 어떻게 교회에 갑니까”라고 변명하기 쉽다. 한 성도도 부부가 함께하는 사업이 잘되어 예배에 빠지는 날이 많을 만큼 바쁘게 지냈다. 그러던 중 아내의 건강이 나빠졌다. 세상 성공에 마음을 빼앗긴 그의 모습을 잘 알던 교회 소그룹 지체들은 그에게 아내 건강 회복을 위해 폐업을 권면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는 순종하여 사업을 정리했다. 지체들과 함께 폐업 예배를 드렸다.

힘들었지만 이 과정을 통해 부부는 믿음 안에서 더욱 하나 될 수 있었다. 게다가 새로운 일자리가 허락되어 경제적 사정도 나아졌다. 세상 성공 대신 가정을 위해 죽는 적용을 하니 하나님의 살리심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한 학생이 대입 수시모집에서 떨어졌다. 그는 “하나님 앞에 가서 실컷 울고 싶다”면서 수련회가 열리고 있는 장소로 곧장 올라갔다. 그 부모는 교회 소그룹 대화방에 이렇게 올렸다. “할렐루야! 감사하게도 우리 아들이 ○○대학교에 불합격했습니다. 이 일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속되다’ 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아들은 ‘떨어지면 하나님께 엄청나게 화낼 것’이라고 하더니 막상 떨어지니 담담히 결과를 받아들였습니다. 곧장 버스 타고 고등부 수련회가 열리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두 달 후 그 학생은 다른 대학에 합격했다. 이번에도 그 부모는 대화방에 글을 올렸다. “할렐루야! 우리 아들이 ○○대학교에 합격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목사님 말씀처럼 회개해야 해. 네가 얼마나 믿음이 연약하면 하나님이 붙여주셨겠니.’” 합격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임을 학생은 불합격의 사건을 통해 몸소 배웠다.

단번에 붙은 사람은 떨어지는 시련을 감당할 믿음의 분량이 부족해서다. 반대로 떨어진 사람은 그만한 시련을 감당할 분량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뢰이자 기대다. 머릿돌이 되는 돌은 멀쩡한 돌이 아닌 버려진 돌이다. 그러므로 떨어지고 버려지는 사건이야말로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것이 머릿돌의 영성이다.

수능 결과로 인한 합격과 불합격의 소식이 전해질 것이다. 그때 기억하자. 건축자가 버린 돌을 하나님은 머릿돌로 세우신다. 떨어진 나를 하나님이 주목하신다. 주님만이 우리 인생의 참된 상급이시다.

김양재 우리들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