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 시장은 단순히 거래가 이뤄지는 장소가 아니다. 소비자와 기업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내린 결정이 만나 가격을 형성하고, 이 가격 신호를 통해 수요와 공급이 조정되며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 이 질서를 움직이는 힘이 바로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러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손도 떨릴 수 있다. 손이 떨리면 가격 신호는 왜곡되고 생산, 소비, 자원 배분은 최적 상태에서 벗어난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시장 실패(market failure)’라 한다. 기후 위기는 대표적 사례다. 오랫동안 기업은 별다른 비용 없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왔다. 탄소 비용이 반영되지 않은 상품 가격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보다 낮았고, 그 결과 탄소 배출이 많은 상품이 과잉 생산·소비됐다. 시장은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기업과 소비자가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탄소세나 배출권거래제(ETS)는 시장 실패를 교정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우리나라는 2015년 동아시아 최초로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시행 10년이 지난 지금 배출권의 96%가 무상으로 할당되고 가격도 세계 최저 수준이다. 낮은 탄소 가격은 기업의 저탄소 전환 유인을 약화시키고, 배출권 매각 수입으로 조성되는 기후대응기금 역할도 축소시켰다. 그간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은 전 세계의 1.7%에 불과해 감축은 도덕적 책무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다르다. 주요국이 자국 산업 보호와 탄소 효율성을 무역 규제의 근거로 삼으면서 온실가스 감축은 도덕이 아닌 경쟁력의 문제로 바뀌었다. 미국은 기후테크 투자를 확대하고, 중국은 제로카본 산업단지를 추진 중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낮은 탄소 가격은 산업 혁신과 감축 모두에 불리하다.
정부는 내년 시작되는 4차 계획 기간부터 배출권거래제 기능을 정상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배출허용 총량을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맞게 엄격히 설정하고, 유상 할당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탄소의 사회적 비용을 시장가격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배출권을 구매해야 하는 기업의 부담은 커질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저탄소 전환을 지원하는 산업정책을 병행하고, 가격 급등락으로 인한 시장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시장안정화예비분(MSR) 제도를 도입한다. MSR은 배출권 가격이 지나치게 높거나 낮을 때 예비분을 공급하거나 흡수해 시장 유동성과 가격 안정성을 유지하는 제도다. 유럽연합과 미국 캘리포니아 등 주요국이 이미 활용 중이며, 우리나라도 내년부터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MSR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면 우리 배출권거래제는 단순한 규제를 넘어 온실가스 감축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이끄는 제도적 기반이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다시 바로 세우는 일이다.
오형나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