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소풍 같은 모임

입력 2025-11-18 03:05

나는 자연의 품에 안긴 영성원에서 매달 모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코이노니아에 3년째 참여하고 있다. 이 모임에는 특별한 목적이 없다. 준비도 없고 주제도 없다. 그냥 만나서 커피 마시고 기도하고 수다 떨고 밥 먹고 헤어진다. 그렇다고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 쉽게 꺼내지 못했던 신앙과 세상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눈다. 참석자들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즐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간다. 지난달 말에는 그동안 대화의 중심 이슈였던 현재의 한국교회를 성찰하고 토론하는 공개 포럼을 열었다. 꽤나 성공적으로 행사를 마치고 고무된 우리는 어떤 후속 조치를 해야 할지 논의했다. 결론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였다. 지금처럼 누구나 편안히 참여할 수 있는 영적 소풍 같은 모임을 유지하기로 했다. 우리는 이 결론에 모두 만족했다.

인생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온갖 목적 지향적 모임에 지쳐가는 우리에게 의도성과 효율성에서 해방된 ‘빈 공간’이 한 곳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가 비워 놓으면 성령께서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들로 채우시고 누군가 필요한 사람들이 들어와 채움받게 된다.

이효재 목사(일터신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