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성경책 한 권을 들고 카운티 교도소를 찾았다. 가족 면회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두 시간을 기다려 한 형제를 만났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그 형제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 교도소에 있다. 가운데 유리창 하나를 두고 전화기로 면회했다. 면회 시간은 한 시간. 파란 수의를 입고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 면회는 늘 눈물로 범벅이 되는 처절한 시간이었다.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기도해 주고 나오면 내 마음도 그 형제의 마음처럼 처참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는데 한 미국인이 나를 불렀다. 내 또래의 온유한 얼굴을 가진 그는 친절한 말투로 다가와 “목사님이십니까”라고 물었다. 서툰 영어로 “그렇다”라고 답하자 그는 앞의 큰 건물을 가리키며 “여기서 사역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산타아나 시티 교도소에서 사역하는 침례교의 빌 콕스 목사라고 했다.
그의 눈에는 열정이 가득했다. 내가 영어를 잘 못 한다고 하자, 그는 담대하게 말했다. “김 목사님(Pastor Kim),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겁니다.” 그러고는 내 손을 꽉 잡았다. 내가 감사를 표현하며 “7일만 시간을 달라”고 하자 흔쾌히 “그렇게 하라”며 전화번호를 건네주었다.
가슴이 뛰었다. 두려우면서도 ‘이게 무엇인가’하는 거룩한 호기심이 앞섰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7일 동안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신학교 강의 중 들었던 말씀이 생각났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사용하신다.” 나는 무엇이 준비되었나.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왜 자격 없는 나에게 콕스 목사를 만나게 하셨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7일이 다 되어갈 무렵, 성경을 읽다가 마음에 강하게 박힌 말씀이 있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영어 성경에서 ‘desire’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갈망을 우리 마음에 주신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이상한 담대함이 생겼고, 그 담대함이 곧 평안이 되어 마음을 안정시켰다.
나는 콕스 목사에게 “하겠다”고 전화했다. 먼저 설교를 준비해야 했다. 영어 설교,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한국어 설교도 어려운데, 영어 설교라니. ‘어떻게 하지?’ 겁이 났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영어로 외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한국어로 설교문을 쓰고 영어 기도문과 설교문을 붙들었다.
모세가 “나는 입이 둔합니다”라며 부르심을 두려워할 때, 여호와께서 “네 입을 대신할 아론이 있지 않느냐”고 하셨다. 그렇다. 내게도 아론이 있었다. 영어를 도와줄 딸과 아들. 한국어로 작성한 설교문을 아들에게 건네주니 영어로 번역해 주었다. 딸은 내가 영어 설교를 읽으면 발음과 억양, 호흡을 고쳐주고, 어디서 멈추고 어디서 힘을 줄지 코치를 했다.
정리=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