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그룹들이 16일 현 정부 임기 내에 800조원 이상의 국내 투자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한·미 관세협상 결과를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발표 이틀 만이다. 관세협상 타결로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 부담은 덜었지만 기업들의 대미 투자 확대 영향으로 국내 투자·고용은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감안한 ‘액션’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재계 총수들을 불러 직접 국내 투자를 당부한 데 따른 응답 성격도 있다.
삼성그룹은 향후 5년간 국내 연구·개발(R&D)을 포함해 총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임시경영위원회를 열고 차세대 반도체 공장인 평택캠퍼스 5공장(P5) 공사를 승인했다. 60조원 이상이 투입되는 5공장은 2028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단지인 평택캠퍼스가 5공장까지 가동할 경우 미래 반도체 시장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생산시설도 대폭 확대키로 했다. 우선 삼성전자가 이달 초 인수를 완료한 유럽 최대 공조기기 업체 플랙트그룹의 국내 생산라인을 광주에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삼성SDS도 인공지능(AI) 인프라 확대를 위해 전남에 2028년까지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5000장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건립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경북 구미1공장에도 AI 데이터센터 건립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 9월 발표한 2030년까지 6만명 신규 채용 약속에 더해 희망디딤돌 등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청년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SK그룹은 2028년까지 국내에 128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는 총 4기의 초대형 팹(생산시설)을 구축할 예정인데, 단계적으로 투자를 확대해 최종 계획이 마무리되면 총 투자 규모가 6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SK는 또 매년 8000명 이상을 채용해왔지만, 반도체 팹 진척도에 따라 추가 고용 가능성도 시사했다. 팹 1기당 최대 1만4000~2만명 고용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8600억원 규모의 첨단 반도체 개발용 ‘트리니티 팹’을 정부와 공동 구축 중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30년까지 국내 AI 생태계 구축과 R&D 등에 총 125조2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직전 5년보다 약 36조1000억원 많은 역대 최대 규모다. 우선 AI 모델 학습과 운영에 필요한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AI 데이터센터를 짓고, 향후 피지컬 AI 생태계를 이끌 ‘현대차그룹 피지컬 AI 애플리케이션센터’ 설립도 추진한다. 피지컬 AI로 확보한 고객 맞춤형 로봇 기술을 바탕으로 ‘로봇 완성품 제조 및 파운드리 공장’도 조성할 계획이다. AI와 전동화, 로보틱스 등 신사업에 50조5000억원을, R&D와 경상 투자에 각각 38조5000억원, 36조2000억원을 투입한다. 내년에는 현대차 울산 전기차 전용 공장을 준공하고, 울산 수소연료전지 신공장은 2027년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LG그룹은 향후 5년간 100조원을 국내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 중 60%는 소부장 관련 기술 개발·확장에 투입해 협력사들과 함께 소부장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이종선 이용상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