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자동차 전장(전자·전기 장치) 시장에서 미래 모빌리티 주도권을 두고 격돌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전장 부품, 차량용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핵심 분야에서 글로벌 공급망을 확장해가며 정면승부를 벌이는 모양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13일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승지원에서 만났다. 2년 만에 한국을 찾은 칼레니우스 회장을 삼성그룹 영빈관으로 초청한 것이다. 두 사람은 만찬을 함께 하며 전장 부품을 포함한 모빌리티 기술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양사는 이번 회동을 계기로 반도체·디스플레이·전장 등 기존 파트너십에 더해 차세대 전기차용 배터리·자율주행 등까지 협력 범위를 확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은 2015년 전장사업팀을 신설하고 이듬해 미국의 전장·오디오 업체 하만을 9조4000억원에 인수했다. 이후 2018년 전장 부품을 AI 등과 함께 4대 성장사업으로 선정해 집중 육성 중이다. 반도체, 정보통신기술(ICT), 디스플레이 기술을 자동차에 확대 적용해 자율주행용 시스템 반도체(SoC) 등 핵심 전장 부품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이 회장은 2020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2022년 올리버 집세 BMW 회장 등과 회동하며 전장 네트워크 확대를 위해 직접 뛰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SDI는 2026년부터 2032년까지 유럽 시장에 판매될 현대차의 차세대 전기차 모델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삼성전기 역시 이 회장이 중국 전기차 업체 BYD 본사를 찾은 뒤인 4월 BYD에 MLCC(전류 흐름을 안정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필수 부품) 공급을 시작했다.
업계는 특히 삼성SDI와 벤츠의 협력에 주목하고 있다. 양사는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개발과 성능 고도화를 중심으로 공조 가능성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벤츠와의 모빌리티 협업이 성사되면 삼성SDI는 BMW와 아우디에 이어 독일 자동차 3사를 고객사로 확보하게 된다. 이와 함께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 핵심 전장 솔루션을 제공하는 하만 역시 새로운 도약기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LG 역시 전장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며 세를 넓히고 있다. LG는 자동차 부품 사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2013년 VS사업본부를 신설했다. 2018년에는 오스트리아의 프리미엄 헤드램프 기업 ZKW를 11억 유로(당시 약 1조4400억원)에 인수했고, 2021년 세계 3위의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합작법인인 LG 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을 설립하며 시장 경쟁력을 강화했다.
LG의 전장 사업 3대 축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 전기차 파워트레인, 차량용 조명 시스템이다. 특히 가전 분야에서 축적한 디스플레이, 구동모터와 인버터 등 파워트레인 기술에서 시장 우위를 갖고 있다. LG전자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VS사업본부는 매출 5조6929억원, 영업이익 2513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성장 가도를 달리는 중이다.
LG주요 계열사 경영진과 칼레니우스 회장의 지난 13일 회동 이후 LG와 벤츠의 ‘전장 동맹’은 한층 강화된 분위기다. LG디스플레이는 2026년형 벤츠 GLC 전기차에 40인치 초대형 차량용 디스플레이를 공급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