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인공지능(AI) 동맹’을 계기로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을 확보하며 AI 데이터센터 구축 여건을 마련했지만 전력·기술 등 핵심 기반이 뒷받침되지 않아 인프라 확충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한국을 잠재적 거점으로 주목하며 데이터센터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인천·경기 일대에 50억 달러를 투자해 신규 AI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한 아마존웹서비스(AWS)가 대표적이다. AWS는 지난 6월에는 SK그룹과 함께 울산에 AI 특화 데이터센터 ‘울산 AI존’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오픈AI도 삼성·SK와 협력해 국내에 전용 데이터센터 구축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현실적 제약은 만만치 않다. 전력 수급이 가장 큰 난관이다. 특히 수도권은 전력망 여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 신청 290건 중 수도권이 195건(67%)을 차지했고, 요청된 전력 용량은 20기가와트(GW)였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17일 “발전량 자체가 부족하다기보다 전력망을 건설하기 힘든 문제가 있다”며 “현재 전력망 수준으로는 수도권 내 추가 AI 데이터센터 수용은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냉각 시스템과 대체 전력 대책도 필수 과제다. 서버와 GPU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열을 식히기 위해서는 냉난방공조(HVAC) 등 고성능 냉각 기술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LG전자가 AI 데이터센터용 냉각 솔루션 개발에 뛰어든 상태지만 해외 기업들에 비하면 후발 주자라는 평가다.
인프라 건립에 따르는 인허가 규제 역시 부담이다. 정부가 AI 데이터센터를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하고 전력계통영향평가 등 절차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정책 지원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데이터센터를 일종의 혐오 시설로 보는 지역 반발도 변수다. 지난해 발표된 세빌스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인허가를 받은 33건 중 절반 이상인 17건이 주민 민원 등의 영향으로 공사가 지연됐다. 최근 서울대 시흥캠퍼스의 AI컴퓨팅센터 설립이 전자파 우려 등으로 중단된 게 대표적이다.
이처럼 복합적 과제가 얽혀 있어 데이터센터 구축이 계획대로 속도를 낼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병호 고려대 AI연구소 교수는 “주민 반대의 경우 사회적 합의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전력·에너지 인프라는 쉽지 않은 문제”라며 “전력 수급만 보더라도 마을 하나가 쓰는 양을 단일 센터가 흡수하는 수준일 텐데 초기의 막대한 비용과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고 짚었다.
세종=이누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