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돈을 벌기 위해 주택이 투자 대상이 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런 게 타당한 일일까요. 주택과 도시를 설계하는 데 있어서 돈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누구든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초고령사회의 미래 주택은 지금과는 달라야 할 것입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지난해 수상자인 일본의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80)의 말이다. 국민일보는 지난 4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서 야마모토와 인터뷰하고 13일 화상 인터뷰까지 더해 미래의 한국 도시 건축과 주거 환경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야마모토는 오래전부터 ‘주택의 공동체성’을 강조해온 건축가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에 대해 고민하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야마모토는 “건축가와 디벨로퍼, 정부가 앞장서서 100년간 거주할 수 있는 집을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건축가는 저층의 밀집된 주택을 설계하고, 디벨로퍼들은 건축의 단위를 100년으로 생각하면 된다”며 “정부 역시 ‘100년간 거주할 수 있는 주택만 허가한다’는 식으로 제도를 만들면 된다. (현재 한국처럼) 30년마다 재건축을 하는 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100년간 거주한다는 전제하에 그 기간 투입될 수선충당금과 관리비 등을 처음 분양할 때부터 포함해 집을 팔고, 세대를 이어가며 살면 된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처럼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주택 거래가 이뤄진다면 투자자들 역시 더 이상 집에 투자하지 않을 거란 의견이다.
야마모토가 ‘먼 미래를 봐야 한다’고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도쿄와 서울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거주지 대부분은 초고층 아파트인데, 건물과 거주자가 모두 고령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제는 수선이 힘든 초고층 아파트 짓기를 그만둬야 한다. 낮은 높이의 공동주택을 밀집해 짓고, 주민들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초고령화, 저출생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면담에서도 그는 이런 내용을 거듭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종묘 인근의 초고층 재개발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야마모토는 “정말 큰 문제다. (종묘 인근엔) 초고층 건물은 건축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종묘 인근 지역이 초고층으로 개발된다면 원주민들의 생활방식과 새로 입주하게 될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완전히 다른 점에서 문제가 생길 거라고 본다. 거주자들이 그 지역에 살면서 돈도 벌 수 있는 형태를 생각하며 마을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마모토가 추구하는 가치는 그가 작업한 주택 설계에서 확인된다. 주택에는 언제나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 공적 공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설계에 반영해 왔다. 한국에도 그의 가치관이 녹아든 건축물이 있다. ‘판교하우징’(성남 분당구 월든힐스 2단지)과 ‘강남하우징’(세곡동 아파트 보금자리 3단지)이다. 이 단지들에선 주민들이 공용 공간을 오가며 텃밭을 가꾸고, 함께 식사하는 등 교류가 일상화됐다.
야마모토가 강조해 온 ‘공동체가 있는 주택’을 재개발될 단지에 구현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이들이 있다. 서울 성북구 종암동 개운산마을정비사업조합은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 카페, 도서관 등의 커뮤니티 시설을 이웃 주민들에게도 개방해 마을에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커뮤니티 시설은 조합원들이 직접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조합은 지난 4일 야마모토의 사무소가 있는 일본 요코하마시를 찾아 조언을 구했다. 야마모토는 “130가구가 입주를 마친 후에 함께 (경제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게 공동체 구성의 핵심”이라며 “단지 내에서 운영할 커뮤니티 시설에 투입되는 비용과 외부인에게 받을 비용 등을 모두 고려해 수익이 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원형 개운산마을사업조합장은 “‘공동체 아파트’ 실현으로 아파트에서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요코하마=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