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외환 당국의 구두 개입과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발표에 힘입어 지난주 막바지 1440원대까지 떨어지면서 진정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원화 약세를 형성하는 구조적 요인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여서 시장 변동성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16일 서울외국환거래에 따르면 지난 1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1457.0원으로 주간거래(오후 3시30분)를 마친 원·달러 환율은 야간거래(익일 오전 2시)를 주간보다 3.9원 더 내린 1453.1원에 마감했다. 이날 개장 직후 기록했던 장중 최고치(1474.9원)와 비교하면 21.8원이나 내린 수치다. 원·달러 환율이 1450원 아래로 내려온 것은 지난 7일 오전 이후 7일 만이다. 진정세는 뉴욕 등 역외시장에서도 이어져 15일 오전 1448.53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1500원대를 향해 치솟던 환율이 안정세를 보인 일차적 원인은 외환·금융 당국이 ‘국민연금 동원’까지 언급하며 강하게 구두 개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4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과 함께 시장상황점검회의를 열고 “(환율에 대해) 가용 수단을 적극 활용해 대처할 필요가 있다”면서 “국민연금·수출업체 등 주요 수급 주체와 긴밀히 논의해 환율 안정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전까지 1470원을 웃돌던 환율은 약 30분 만에 1450원대 후반까지 곤두박질쳤다.
같은 날 공개된 미국과의 조인트 팩트시트 역시 안정세에 힘을 보탰다. 이날 대통령실이 공개한 팩트시트에는 한국이 어떤 경우에도 연간 200억 달러를 초과하는 액수를 조달할 일은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투자 이행 과정에서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지나치게 커질 경우 미국에 조달 금액·시점 조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안전장치’도 포함됐다.
하지만 환율이 장기적으로 안정화된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 투자 증가,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주식시장 이탈 등 최근의 원화 약세를 이끌었던 구조적 요인이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이날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3일부터 14일까지 국내 개인 투자자는 해외 주식 36억3000만 달러(약 5조3000억원)를 순매수했다. 지난달 1~14일(17억7200만 달러)보다 2배 이상 증가한 규모다. 지난달 개인의 해외 주식 순매수 규모가 68억1300만 달러로 집계돼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11년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 같은 흐름이라면 이달 다시 한번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해외 주식 순매수의 76.8%는 미국에 집중됐다. 미국 뉴욕증시의 3대 지수가 최근 인공지능(AI) 투자 거품론 등으로 대폭 하락한 틈을 타 저가매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같은 기간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주식 이탈에도 속도가 붙었다. 외국인들은 이달 들어 지난 14일까지 총 9조732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당국 개입으로 상승세는 진정됐지만 증시 조정 국면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고 외인의 주식 자금 이탈도 이어지고 있어 (환율이)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이의재 장은현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