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최대 200억 달러 언제, 어디에 투자할지 여전히 안갯속

입력 2025-11-17 02:02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기자회견장에서 한·미 정부가 확정한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를 발표하기 위해 단상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한·미 관세 협상이 이재명정부 출범 5개월 만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실제 투자를 위한 양국 간 실무 논의는 이제 첫걸음을 뗄 준비를 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여기(협상 결과) 중에 공정한 내용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말했을 정도로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는 그 시점과 투자처 등에서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다. 미국산 식품·농산물 수입 검역을 논의할 US 데스크 설치와 구글의 고정밀 지도 공개 등 비관세장벽 완화 요구도 남아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심리 중인 ‘트럼프 관세’ 재판도 결과에 따라 변수가 될 전망이다.

16일 한·미가 공개한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에 따르면 연 최대 200억 달러의 대미 투자금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최종 투자처를 정한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위원장인 투자위원회와 김 장관이 위원장을 맡을 협의위원회가 논의해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투자처를 추천한다는 것이 전제다. 어느 분야에 얼마를 투자할 것인지 등은 공백 상태다. 투자처 등을 놓고 양국 간 이견이 있을 때 한국 측 입장이 얼마나 반영될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MOU에 의견 불일치나 분쟁은 최대한 상호 우호적으로 해결한다는 내용이 담긴 만큼 원만한 조율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미 투자 용처로는 인공지능(AI)·양자컴퓨터·반도체 같은 첨단 분야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전력 인프라 구축 등이 꼽힌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AI와 양자컴퓨터 등 첨단 기술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대미 투자 1호로 거론되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도 변수다. 김 장관은 관세 협상 결과 발표에서 “현재로선 상업적 합리성이 없어 참여를 안 한다고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했다.

한·미 간 통상·안보 조인트 팩트시트에 따른 비관세장벽 해소 논의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팩트시트에는 ‘양국은 호혜적 무역·투자 환경을 위해 비관세장벽을 해소키로 합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따라 양국이 설치키로 합의한 ‘US 데스크’에선 미국산 사과 등 원예작물과 유전자변형작물(LMO) 감자 등에 대한 검역 논의가 확대될 예정이다. 디지털 분야에서도 ‘네트워크 사용료’ ‘온라인 플랫폼 규제’ ‘국경 간 자료 전송’ 등 각종 규제로 미국 기업들이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로 인해 정부·여당의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입법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는 반면 구글·애플 등 미국 빅테크의 국내 고정밀 지도 제공 요구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선고를 앞둔 미 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성 판결에 따라 이번 협상의 근간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교역국 대상 상호·품목 관세로 지난 9월 기준 전년 대비 2배 이상의 관세 수입을 거뒀다. 만약 대법원이 위법 판결을 내리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입지는 급속도로 축소되고 기존 관세의 환급 압력도 커진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품목 관세를 확대하는 식으로 ‘우회로’를 찾을 경우 교역 리스크가 다시 커질 수 있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미 행정부도 플랜B를 모색하는 등 선고 결과를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조선업 협력과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 얻어낸 부분은 신속한 추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