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측근 집에는 ‘황금 변기’… 우크라 비리 일파만파

입력 2025-11-16 18:41
지난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A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측근과 정부 고위급이 연루된 부패 사건으로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핵심 피의자 아파트에서 금으로 만든 변기가 발견됐고 현금이 가득 든 가방도 압수돼 파장이 커지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엑스에서 국영 원자력 기업 에네르고아톰에 일주일 내로 새 감독위원회를 설립하고 전면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부패 사건으로 비판 여론이 커지자 수습에 나선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가반부패국과 반부패특별검사실은 에네르고아톰을 둘러싼 대형 비리 사건을 수사 중이다. 의혹의 골자는 에네르고아톰 고위 간부들이 정부 계약금액의 10~15%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뒷돈)를 협력사로부터 챙겼다는 것이다. 세탁된 뒷돈 규모는 1억 달러(1400억원)로 추산된다. 범행 과정에서 정재계 인사들이 불법행위를 묵인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수사 당국이 10일 젤렌스키의 측근 티무르 민디치(위 사진)의 아파트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황금 변기가 설치된 욕실. 텔레그램 캡처

수사 당국은 젤렌스키의 동업자였던 티무르 민디치를 핵심 주동자로 보고 입건했다. 민디치는 젤렌스키가 코미디언 시절 설립한 미디어 제작사 크바르탈95의 공동 소유주다. 수사 당국은 민디치가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범행을 벌인 것으로 의심한다. 헤르만 갈루셴코 법무장관(전 에너지장관)과 스비틀라나 흐린추크 에너지장관도 사건의 뒷배로 지목됐다.

현지 매체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에 따르면 수사 당국은 지난 10일 오전 민디치의 아파트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민디치는 아파트 14층 집과 17층 사무실을 소유했는데 14층 거주지에서 황금 변기 등이 설치된 욕실이 발견됐다. 당국은 유로화 등이 가득 담긴 비닐백 사진도 공개했다. 민디치는 압수수색 약 4시간 전 국경을 넘어 도주한 것으로 드러나 수사 정보가 사전 유출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젤렌스키는 지난 13일 사건에 연루된 장관들을 해임하고 민디치에 대해 자산 동결 등 제재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에너지시설 공격으로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반발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지 소셜미디어에는 정전으로 불이 꺼진 방을 손전등으로 비추는 모습과 함께 “민디치와 젤렌스키에게 감사하다!”라는 조롱성 문구가 적힌 글도 퍼졌다.

향후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실 연루 정황이 드러날 경우 젤렌스키의 입지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전쟁의 중대 시점에 지도부가 흔들리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우방국 지원이 절실한 우크라이나에 부패 사건이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 유럽연합(EU) 관계자는 “EU 집행위원회가 우크라이나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동맹국 폴란드의 도날트 투스크 총리도 “이런 (비리) 사실이 드러나면 우크라이나에 연대해 달라고 파트너들을 설득하는 게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