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이 재생을 허락할 때

입력 2025-11-18 00:30

하루에도 수십만 번, 우리 몸에서는 일명 ‘작은 전쟁’이 벌어진다. 보이지 않는 세균과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침입하고, 면역세포는 이를 막아내기 위해 쉼 없이 움직이는 게 그것이다. 대식세포가 적을 삼키고 T세포는 감염된 세포를 제거하며 B세포는 항체를 만들어 방어선을 세운다. 이 덕분에 우리는 감기에 걸리거나 상처를 입어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전쟁이 멈추지 않고 계속될 때다. 불길이 꺼지지 않으면 집을 다시 지을 수 없듯, 염증이 계속되면 몸은 회복의 기회를 잃는다. 이후부터 피로는 깊어지고 통증은 오래가며 세포는 늙기 시작한다. 면역세포가 쉬지 못하는 몸은 결국 자신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줄기세포는 단순히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는 기술이 아니다. 이들 세포는 손상 부위로 이동해 염증 신호를 감지하고, 인터루킨-10(IL-10)과 TGF-β 같은 항염 인자를 분비하며 면역세포의 과열 반응을 진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대식세포는 공격형(M1)에서 회복형(M2)으로 전환되고, T세포는 불필요한 공격을 멈춘다. 면역세포가 몸의 전장에서 방어 역할로 뛰는 대신 회복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으로 그 목표를 바꾸는 것이다.

2019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리뷰 면역학’(Nature Reviews Immunology)에 실린 연구 가운데 피팅거 박사의 연구팀은 “줄기세포의 치유 효과는 세포 분화보단 면역 반응을 조율해 염증을 완화하는 능력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즉 줄기세포의 재생력은 새로운 세포를 심는 데서가 아니라 몸의 평화를 세우는 데서 시작된다는 의미다.

현대인은 면역의 휴식에 관해 거의 모른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업무, 불규칙한 식사, 과도한 스트레스, 지금껏 누적된 환경오염…. 이 모든 것이 우리 몸 안에 작은 불씨를 남긴다. 그 불씨가 꺼지지 않은 채 계속 타오르는 것이 바로 ‘만성 염증’이다. 2019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은 이를 “염증성 노화(Inflamm-aging)”라 불렀다. 세포 노화의 본질이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지속적인 염증 반응의 피로 누적이라고 분석한 것이다.

관절염과 당뇨, 심혈관 질환과 우울증 등 노화성 질환의 공통 배경에는 이 조용하지만 끈질긴 염증이 자리한다.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몸속 불이 꺼지지 않으면 진정한 회복은 일어나지 않는다.

치유는 전쟁이 끝난 자리에서야 시작된다. 최근 재생의학은 줄기세포와 면역세포 간의 정교한 대화에 주목하고 있다. 줄기세포는 대식세포와 T세포, NK세포와 신호를 주고받으며 염증을 완화하는데 그 변화된 환경 속에서 손상된 조직이 다시 자라난다. 2022년 첨단면역학회(Frontiers in Immunology) 연구에 따르면 줄기세포 치료의 핵심은 세포가 직접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면역 환경을 안정시켜 회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에 있다. 면역이 평화를 배울 때 재생이 허락된다는 의미다.

앞으로의 의학은 단일한 세포 치료를 넘어 면역과 재생이 협력하는 통합적 치유 의학으로 발전할 것이다. 인공지능(AI)과 정밀의학은 이 복잡한 면역의 언어를 해독하는 도구가 되겠으나 결국 치유의 본질은 여전히 균형에 있다. 몸은 이미 자신을 고칠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이 깨어나려면 면역이 먼저 평화를 배워야 한다. 과열된 면역은 자기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무너진 면역은 외부의 적을 막지 못한다.

줄기세포의 재생력은 그 혼란의 한가운데서 질서를 회복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닌 화평의 하나님”(고전 14:33)이다. 혼돈 가운데 질서를 세우는 분이기도 하다. 우리의 몸도 그분의 손길 아래서 다시 평화를 배워간다.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