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완벽주의로 빚어낸 아날로그 감성의 절정

입력 2025-11-17 00:01 수정 2025-11-17 00:01
가수 김동률이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지난 8~16일 7회에 걸쳐 진행된 단독 콘서트 ‘산책’ 무대에서 오케스트라와 밴드 라이브 반주에 맞춰 노래하고 있다. 김동률은 “데뷔한 지 32년이 되다 보니 연주자와 편곡가, 스태프까지 오래 호흡을 맞춘 동료들이 생겼다. 그들의 재능과 열정, 노력 덕에 나 혼자선 절대 할 수 없었을 공연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뮤직팜 제공

모두가 숨죽인 고요한 어둠 속에서 경쾌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이내 막이 걷히고 눈부신 조명과 함께 가수 김동률(51)이 등장하자 객석에선 환호가 번졌다. 오프닝 곡 ‘더 콘서트’의 가사처럼, ‘리듬의 파도에 몸을 싣고/ 음의 향연에 함께 취해보며/ 수많은 소리가 하나 되어/ 같은 꿈을 만들어 준 시간’은 그렇게 시작됐다.

김동률은 지난 8~10일과 13~16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2년 만에 단독 콘서트 ‘산책’을 열었다. 방송 활동 없이 앨범과 공연으로 대중과 교감하는 ‘극단적 신비주의’에도 그의 공연은 늘 만석이다. 7회 공연 7만 석이 일찌감치 매진됐다. 김동률은 무대에서 “4년마다 공연하는 거로 유명해 ‘월드컵 가수’라는 별명도 있는데, 어느 날 손꼽아 보니 그 주기로 하면 두 번만 더 하고 환갑이더라”며 “그건 아니다 싶어 빨리 나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공연에서는 사진·영상 촬영 등 휴대전화 사용이 엄격히 금지된다. 오롯이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음악에 맞춰 펼쳐지는 조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덕분에 관객은 밴드와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풍성한 사운드와 그 위에 정성껏 얹어지는 김동률의 목소리를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담게 된다.

김동률 2025 콘서트 '산책' 공연 모습. 뮤직팜 제공
2시간30분 동안 이어진 공연은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내 사람’ ‘취중진담’ 등 명곡을 총망라했다. 히트곡 위주였던 직전 ‘멜로디’ 공연과 달리 ‘하소연’ ‘망각’ ‘새’ ‘희망’처럼 비교적 대중에게 덜 알려진 곡도 셋리스트에 포함했다. 그는 “아는 곡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잘 알지만, 히트곡만 모아 천편일률적인 공연을 하고 싶진 않았다”고 했다.

김동률은 매 공연 상당수 곡을 새롭게 편곡해 선물처럼 들려준다. 이번엔 ‘시작’ ‘동화’ ‘황금가면’ 세 곡을 묶어 한 편의 어른동화 뮤지컬로 꾸몄고, ‘걱정’ ‘여행’ ‘J’s Bar에서’를 엮어 재즈풍 무대도 선보였다. 그는 “여러분이 제 공연을 늘 찾아주시는 이유는 풍성한 어쿠스틱 사운드와 연주 때문이라 생각한다”며 “악보를 거듭 고치고, 음표 길이 하나까지 고민하며 열심히 준비한다. 그런 먼지 같은 디테일이 모여 ‘다름’을 만들어낸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동률 2025 콘서트 '산책' 공연 모습. 뮤직팜 제공
앵콜에서는 지난해 12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전람회 멤버 서동욱을 추모하는 무대가 이어져 먹먹한 여운을 안겼다. ‘겨울밤의 꿈처럼 어렴풋하겠지만/ 잊을 순 없겠지 낯익은 노래처럼/ 바래진 수첩 속에 넌 웃고 있겠지.’ 김동률이 피아노를 치며 전람회의 곡 ‘첫사랑’을 부른 뒤 화면엔 ‘사랑하는 나의 벗 동욱이를 보내며’라는 문구가 띄워졌다. 마지막 곡으로 전람회 1집 ‘기억의 습작’이 이어지자 일부 팬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아내와 고1 딸을 데리고 공연장을 찾은 김동현(50)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김동률을 좋아했다. 그의 음악에는 한 사람의 생애가 응축돼 있어 마음을 울린다”면서 “서동욱 추모 메시지를 보고 울컥했다”고 얘기했다. 대학가요제 시절부터 팬이라는 50대 김나나(가명)씨는 “음악이 좋고,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에도 본받을 점이 있다”고 했다.

김동률 2025 콘서트 '산책' 공연 모습. 뮤직팜 제공
김동률은 “대학가요제를 통해 비교적 수월하게 데뷔했고 첫 앨범도 큰 사랑을 받았다. 정상에서 시작해 앞으로는 내리막뿐일 거로 생각했다. 앨범도, 공연도 늘 ‘다음이 없을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해 왔는데, 그런 절실함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행복한 얼굴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그는 다음을 기약했다. “각자 일상을 열심히 살다가 오랜 친구처럼 어느 날 반갑게 만나면 좋겠습니다. 그 짧지만 강렬한 만남이 우리에게 또 살아갈 힘을 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우리 조금만 더 늙어서, 곧 만나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