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 금융 기조 속… 저신용자가 덜 내는 가계대출 이자

입력 2025-11-17 02:05
16일 서울의 한 은행 앞에 주택담보대출 상품 홍보 현수막이 걸려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지난 14일 기준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 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연 3.930~6.060%로 집계됐다. 주담대 금리가 6%를 넘은 것은 약 2년 만이다. 연합뉴스

은행권에서 저신용자의 가계대출 금리가 고신용자보다 낮은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최고 금리는 연 6%를 넘겼다. 기준금리가 지금보다 1% 포인트나 높았던 2년 전 수준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 계급제’라는 표현까지 쓰며 취약층 지원을 강조하고 금융 당국이 부동산 시장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대출을 죄면서 시장 원리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16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은 지난 9월 신용 600점 이하인 금융 소비자에게 평균 연 5.98%의 금리로 가계대출을 내줬다. 신용 601~650점 구간인 고객은 이보다 연 0.21% 포인트 높은 6.19%에 돈을 빌렸다. 신용 951~1000점은 연 4.25%, 901~950점 4.41%, 851~900점 4.65% 등 다른 구간은 점수가 하락하는 만큼 대출 금리가 상승했는데 600점 이하 구간에서만 오히려 내려갔다.

다른 은행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신용 600점 이하인 금융 소비자는 신한은행에서 가계대출을 연 7.49% 금리로 받아갔지만 601~650점은 이보다 0.23% 포인트 높은 7.72%에 빌렸다. IBK기업은행 이용자의 경우 신용 600점 이하는 연 4.73%에, 601~650점은 이보다 0.4% 포인트 높은 5.13%에 돈을 빌렸다.

은행권이 포용금융에 열중한 결과로 풀이된다. 정부 출범 후 금융 당국은 저신용자에게 고금리를 매기는 것을 ‘약탈적 대출’로 규정하고 은행권에 ‘취약층에 관용을 베풀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3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6대 개혁 과제 중 하나로 금융을 꼽고 “현재는 가난한 사람이 비싼 이자를 강요받는 금융 계급제가 됐다”고 직접 발언하기도 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연체율이 높은 저신용자에게는 그렇지 않은 고신용자 대비 비싼 이자를 받는 게 당연하다”면서도 “일부 은행이 금융 당국 입김에 특정 신용 점수 구간 대출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춘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 개입에 주담대 금리와 기준금리 간 차이도 벌어지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4대 은행의 지난 14일 기준 혼합형(5년 고정) 주담대 금리는 연 3.93~6.06%다. 4대 은행의 혼합형 주담대 최고 금리가 연 6% 선을 넘긴 것은 2023년 12월 이후 약 2년 만이다. 당시 기준금리는 3.5%로 지금보다 1% 포인트 높았다. 다만 이는 최근 혼합형 주담대의 지표인 은행채 금리가 뛴 탓도 있다. 최근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더 낮추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확산하면서 은행채를 비롯한 시장 금리가 상승하는 추세다.

신규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기준 변동형 주담대 금리도 연 3.77~5.77%로 상단이 0.26% 포인트 상승했다. 이 기간 지표 금리인 코픽스는 0.01% 포인트 상승했는데 주담대 금리 상승 폭이 이를 훌쩍 웃돈 것은 가계대출 규제 때문으로 추정된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6·27 대출 규제에서 가계대출 총량제 한도를 대폭 삭감한 탓에 은행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라면서 “대출 수요를 자연스럽게 줄일 방법은 가격에 해당하는 금리를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 당국이 개입해 시장을 왜곡시키는 정책은 오래 쓰기 어렵다”며 “취약층의 소득을 높이고 양질의 주택 공급을 늘리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