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진료실에는 고열과 기침, 온몸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독감 환아들이 급증하고 있다. 올해 독감은 예년보다 한두 달 일찍 유행이 시작됐고 의심 환자 수는 지난해의 3배 이상이다. 최근 10년 새 가장 큰 유행이 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며 말 그대로 ‘주변에 한 명쯤은 아픈’ 상황이다.
우리 병원의 병동과 외래도 예외가 아니다. 대기실에는 두꺼운 패딩을 입고 마스크를 낀 아이들이 피곤한 눈빛으로 기침을 하고 진료실에서는 청진기만 대도 움찔할 정도로 열이 오른 아이들이 독감 검사가 싫다며 울곤 한다. 보호자들은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새벽에 39도까지 열이 올랐어요”라며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문제는 독감이 가족 안에서 순식간에 번진다는 점이다. 밀접하게 생활하는 만큼 전파가 매우 빠르고 실제 연구들에서도 가정 내 감염이 주요 경로로 반복 보고된다. 진료 중에는 “첫째가 유치원에서 시작해 둘째, 엄마·아빠, 마지막엔 할머니까지 모두 앓고 있어요”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래서 독감 예방접종은 ‘나를 위한 주사’가 아니라 ‘가족을 지키는 방패’다. 접종 후 2주~1개월 사이 방어 항체가 형성되며 감염과 중증 위험을 크게 낮춰준다. 특히 영유아, 임신부, 만성질환 아이가 있거나 조부모와 함께 사는 가정이라면 예방접종이 곧 가족 전체의 안전과 직결된다.
그럼에도 “맞히려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어요” “좀 더 있다가 맞히려고 했어요”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오늘 접종하면 2주 뒤에는 면역이 생기고 늦게 맞아도 비교적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사례를 진료 현장에서 자주 본다.
보호자들께 세 가지를 당부드린다. 첫째, 발열·기침·근육통이 나타나면 감기라고 넘기지 말고 특히 38.5도 이상 고열이나 기침이 지속되면 진료를 받아 독감 여부를 확인해 달라. 둘째, 아픈 아이를 돌볼 때는 마스크 착용, 손 씻기, 식기·수건 구분 등 기본 위생 수칙을 지켜달라. 셋째, 아직 접종하지 않은 가족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가까운 의료기관에서 예방접종을 해달라. 소아과 의사들은 언제든 아이들을 돌볼 준비가 돼 있지만 가장 좋은 치료는 ‘아프지 않도록 미리 지키는 것’이다.우리아이들의료재단 이사장
대한전문병원협회 총무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