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 기도로 세워진 118년 교회, ‘가정’으로 다시 피다

입력 2025-11-17 03:08
김경우 양평동교회 목사가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교회 본당에서 ‘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 사역을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서울지하철 9호선 선유도역 4번 출구를 나와 골목을 따라가면 표지판 하나가 시선을 붙잡는다. ‘Since 1907 언더우드가 기도로 세운 교회 양평동교회.’ 교회 안에 들어서자 본당 마당 한편에 둥근 잎 느티나무가 서 있었다. 나무는 호러스 G 언더우드(1859~1916) 선교사가 가져와 새문안교회와 이곳 양평동교회에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대 나무는 100년을 버틴 뒤 고사했지만 교회는 목재를 십자가와 강대상으로 되살렸다. 혹시 몰라 남겨둔 나무 일부분도 새롭게 뿌리를 내렸다. 오랜 세월을 품은 나무처럼 교회도 역사를 지켜왔다.

지난 11일 서울 양평동교회 목양실에서 김경우(52) 목사를 만났다. 김 목사는 2016년 말 부임해 올해로 10년 차를 맞는다. 김 목사는 “분란이나 쪼개짐 없이 118년을 이어온 평안한 공동체”라고 교회를 소개했다.

양평동교회는 언더우드가 1903년 세운 영등포교회와 함께 ‘형제 교회’로 불린다. 1907년 설립된 이후 한강 남쪽 장로교 전통의 뿌리를 지켜왔고 19년 3·1운동에는 교인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는 2019년 이 공로를 인정해 ‘3·1운동 참여교회’ 현판을 수여했다. 김 목사는 “산업선교 때엔 노동 현장을 돌보고 나라의 부름 앞에선 애국으로 응답했던 교회”라고 말했다.

“가정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전통의 교회가 젊은 교회로 거듭난 배경엔 김 목사의 ‘가정사역 목회’가 있다. 그는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하고 미국 히즈대에서 가정사역(PhD)도 전공했다. 김 목사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보니 한국교회의 주제가 가정으로 바뀌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김 목사는 과거에는 교인들이 교회를 세우기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지만 그 과정에서 교인들의 가정이 신앙적·구조적으로 무너졌다고 진단했다.

“그 시절엔 교회의 부흥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 믿었습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머무는 시간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많았죠. 부모가 교회 봉사로 바쁘고 자녀는 혼자 남겨지는 일도 흔했습니다. 신앙 전수보다 교회의 성장에 집중하다 보니 세대 간 단절이 생긴 겁니다.”

그의 부임 이후 교회 표어는 자연스레 ‘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으로 정착됐다. 3대 혹은 4대가 함께 예배드리는 가족 단위 신앙이 교회 분위기를 이끌었다. 영·유아부터 노년까지 세대별로 무대에 서는 성탄 발표회 등이 대표적이다.

김 목사는 “결혼 후에도 자녀와 손주가 함께 교회에 다니는 가정이 많다”며 “부모 세대가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는 그 사랑 때문에 교회를 즐거워한다. 이 토양 덕분에 가족이 교회의 핵심 정체성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정 안에서 신앙을 몸으로 살아낼 때 교회의 신앙도 살아난다”고 덧붙였다.

환대로 이어진 사역의 역동성

역사가 긴 교회에서 변화는 쉽지 않다. 익숙한 방식이 안전하고 전통이 곧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평동교회는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달라졌다. 예배와 모임이 중단되던 혼란 속에서 교회는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카카오톡 당회’를 여는 등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청년·청소년 국내선교를 천안 제주 등지로 보내고 아웃리치 사역을 이어갔다.

“팬데믹 당시 교회가 멈추면 신앙도 멈춘다고 생각했습니다. 방역당국이 금지하지 않는 한, 예배와 교육, 선교를 이어가자고 장로님들과 마음을 모았습니다.”

그 결과 코로나 기간 동안 교회 재정은 20% 이상 늘었고 청년부는 두 배로 성장했다. 김 목사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였다”면서 “교인들이 ‘움직이는 교회’를 경험하면서 교회의 체질이 역동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지역을 향한 환대의 문도 커졌다. 교회는 최근 영등포구청과 함께 ‘퇴근길 청년한끼’ 사업을 진행했다. ‘요리 배움’과 ‘반찬 나눔’으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청년들이 직접 반찬을 만들고 반찬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사회공헌형 사업이다.

10년 만에 부활한 직장인 예배에는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마다 100여명이 참석한다. 김 목사는 “직장인 예배 참석자의 80~90%는 외부인”이라며 “그 중 절반에 가까운 이들은 현재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교회가 편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나안 교인’이었던 직장인이 교회로 돌아간 사례와 양평동교회에 등록한 경우도 있다. 이밖에도 교회는 양평동 내 12개 경로당을 정기적으로 순회하며 공연과 선물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김 목사는 “오래된 교회일수록 지역 사회와 관계가 느슨해지기 쉽다”면서 “하지만 팬데믹을 지나며 사역의 역동성을 경험한 교인들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바뀌었고 교회는 지역의 품 안으로 다시 들어가게 됐다”며 “이웃이 편하게 드나드는 교회, 열린 교회가 되는 게 진짜 회복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