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글리 코리안, 코리안 타임 있었지만…
세계 각국에서 인정받은 ‘프리미엄 코리아’
세계 각국에서 인정받은 ‘프리미엄 코리아’
지난달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출장을 다녀왔다. 고려인인 현지 가이드는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를 그는 “한국 회사에서 일하면 가족의 미래를 계획할 수 있어서”라고 설명했다. 출장 중 만난 우즈베키스탄 청년 역시 한국 취업을 ‘꿈’이라고 표현했다. 현지의 한 레스토랑 사장은 경기도 평택 공단에서 몇 년간 일해 모은 돈으로 지금의 고급 식당을 열었다고 했다. 그에게 한국은 ‘인생을 다시 설계하게 해준 곳’이었다.
비슷한 경험은 다른 지역에서도 있었다. 2년 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난 가이드는 중국산 스마트폰을 쓰고 있었다. 왜 한국 제품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비싸니까요”라고 답했다. 이 말엔 ‘비싸지만 품질은 좋다’는 인식이 담겨 있었다.
최근 해외를 다니다 보면 ‘한국(인) 프리미엄’을 실감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한국은 더 이상 굴뚝 산업만 강한 나라가 아니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 한국 콘텐츠는 세계인의 취향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예전에는 해외 호텔 TV에서 삼성·LG 로고만 보여도 반가웠다면, 지금은 한국 문화가 세계 소비 트렌드를 이끄는 나라가 됐다. K팝, K드라마, K뷰티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이러한 한국(인) 프리미엄은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한때 서양인에게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의 작은 나라”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정도의 인식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외국인이 먼저 한국인을 알아보고 BTS, 손흥민, 오징어게임 이야기를 꺼내며 말을 건넨다. 한국은 ‘설명해야 하는 나라’에서 ‘이미 알고 있는 나라’, 더 나아가 ‘배우고 싶은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개발도상국이든 선진국이든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크게 높아졌다. 예전의 ‘어글리 코리안’, ‘코리안 타임’ 같은 말은 이제 낡은 표현이 됐다.
문화의 힘만이 아니다. 삼성·현대차·LG 등이 구축한 제조업 경쟁력과 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 산업의 성장세는 한국의 국가 가치를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다. 인구 5000만명 규모의 나라가 볼펜부터 자동차, 스마트폰, 초대형 선박, 초미세 반도체까지 생산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아니, 이러한 역량을 모두 갖춘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한국 소비자들은 챗GPT 같은 새로운 기술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 국민이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하고, 스마트폰 보급률도 세계 최상위권이다. 반나절이면 전국 대부분을 이동할 수 있는 교통 인프라도 갖췄다. 이런 환경이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을 신기술 테스트베드로 삼는 이유다.
그러나 외부의 화려한 조명이 한국 내부의 현실까지 비춰주지는 못하는 듯하다. 한국은 세계 최저 출산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노인빈곤율이라는 어두운 지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청년층이 체감하는 현실은 더 냉혹하다. 기자가 대학생이던 10여년 전 사회적 이슈가 ‘청년실업’이었다면, 지금은 구직 대신 ‘그냥 쉬었음’으로 분류되는 30대가 수십만명에 이른다. 취업뿐 아니라 주거·결혼·출산·노후로 이어지는 전 생애 부담이 청년 세대를 짓누르면서 “한국에서 살기 어렵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다. 혁신을 누구보다 빠르게 받아들이는 한국인들이 정작 자신의 삶의 속도는 조절하지 못한다는 아이러니도 드러난다.
한쪽에서는 한국이 좋아서, 한국에 오고 싶어서 세계인이 줄을 서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한국의 삶이 너무 벅차서 자포자기하거나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 상반된 감정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세계가 인정한 ‘K’의 힘이 한국 사회 내부의 삶까지 더 나아지게 만드는 날이 올 때 비로소 ‘프리미엄 코리아’가 온전히 자리 잡을 것이다.
김민영 산업2부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