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상담소] 아들 출산 압박감에 지운 아이, 죄책감에 괴로워요

입력 2025-11-17 03:04

Q : 30여년 전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양가 부모님의 말씀에 딸만 둘이던 저는 뱃속의 세 번째 여자아이를 지운 적 있습니다. 가끔 그 기억이 떠올라 죄책감에 우울하고 괴롭습니다.

A : 최근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출생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가 104~106명으로 자연 범위에 근접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만 하더라도 여아 100명당 남아가 약 116명, 특히 셋째 이상 출산에서는 여아 100명당 남아가 무려 190명대였습니다. 우리나라 남아선호 사상이 극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많은 분이 질문 주신 분과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생명을 지운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하고 싶은 선택은 아닙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지라도 양심의 가책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임신과 출산을 책임지고 있는 여성의 몸은 육체적·심리적 짐을 떠안았을 것입니다. 어떤 여성은 이후 마음 몸 영혼에 그 기억이 남아 교회에 가서 하나님과의 교제 자체를 두려워한다고도 합니다.

죄책감이란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여기는 행위에 대한 자각입니다. 우리는 잘못했다고 느끼면 잘못한 대상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죄책감은 반드시 없애야 할 감정만은 아닙니다. 내 양심이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죄책감이 들 때 두려움이 크거나 우울감이 일상의 기능을 마비시키지 않는 한에서 ‘내 양심이 작동하는구나’ 하고 미안한 마음을 느끼시고 그 뒤에는 조금 흘려보내 주세요.

그러나 한 가지만 꼭 기억해 주세요. 그 죄책감은 혼자만의 짐이 아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에 이미 딸을 둘 가진 젊은 엄마가 부모님의 “아들 낳아라”는 청을 어찌 거역했겠습니까. 더 나아가 남아를 선호하는 그 시대의 흐름을 개인 혼자서 역행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그러니 죄책감으로 인한 우울감과 괴로움의 짐은 우리가 모두 함께 져야 마땅한 것 같습니다. 질문 주신 분이 모든 짐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 함께 이 짐을 나눠서 30년간 무거웠을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를 바랍니다.

정푸름 치유상담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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