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대학 철밥통론의 기원과 서울대 10개 만들기

입력 2025-11-17 00:35

방만한 지원에 생긴 대학 부패
애덤 스미스, '철밥통'으로 비판

외부 감시로 해결해야 하는가
자율성 원칙으로 풀어야 하나

거점국립대 제대로 키우려면
대학과 교수에게 맡겨야 한다

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설계자로서 교육부와 거점국립대 중간에 끼여 참 당황스럽다. 교육부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위해 2026년 거점국립대 연구중심 지원을 9개 대학 모두에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3개를 선정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했다. 학부를 뺀 대학원 연구 지원을 위해 한 대학당 400억원씩 3개 대학을 선정해 12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한다. 또한 인공지능(AI) 중심대학도 3개 대학만 뽑아 우선 실시하겠다고 한다.

교육부와 거점국립대 의견 모두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 교육부는 국립대 ‘철밥통론’을 꺼내 들었고, 거점국립대는 ‘지역균형발전론’을 들고나와 원래 취지에 맞게 9개 대학 모두 골고루 지원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육부는 대학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거점국립대가 내부 개혁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연구비로 통제하고 평가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견 타당하다. 거점국립대는 3개 대학만 우선 지정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생겨 대학의 균형발전이 아니라 불균형발전이 일어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타당한 지적이다. 이 대립은 예산 부족과 법적 규제의 한계 때문에 발생되는 것으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옳거나 틀린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새로운 입법을 통해 예산과 법적 규정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한 가지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교육부, 언론, 일반 국민에게 퍼져 있는 대학 ‘철밥통론’의 문제점이다. 대학 ‘철밥통론’의 기원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다. 1740년 스미스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을 졸업한 후 잉글랜드의 옥스퍼드대에서 장학금을 받고 수학했다. 옥스퍼드대는 명성 면에서 압도적이었지만 스미스는 옥스퍼드대에 대해 대실망을 했다.

왜냐하면 국가의 지원으로 월급을 받는 옥스퍼드대 교수들이 가르쳐주는 것이 없고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1776년 출간한 국부론에서 옥스퍼드대를 ‘추락과 경멸’의 대상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스미스의 옥스퍼드대 ‘철밥통론’의 핵심은 국가의 방만한 지원에 의한 대학의 ‘부패’였다.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답게 스미스는 경쟁에 의한 시장주의 원칙으로 대학을 개혁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 대학 시장주의의 원리는 첫째, 학생들이 교수들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둘째, 교수들이 학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한다. 셋째, 대학은 교수와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강생이 많은 교수들이 월급을 많이 받아야 하고 대학은 인기 많은 교수들을 유치해야 한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교수는 ‘일타 강사’가 돼야 한다. 또한 대학의 부패를 막기 위해 국가나 교육부가 대학을 외부에서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미스의 대학개혁론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 바로 현대 연구중심대학의 창시자 빌헬름 폰 훔볼트였다. 그는 1810년 ‘베를린 대학’의 창설로 연구중심대학 혁명을 일으킨 학자다. 훔볼트 혁명의 중심은 시장에 의한 경쟁이 아니라 ‘학문에 대한 사랑’의 조직화였다. 이 조직화의 원리는 첫째 연구와 교육의 통합, 둘째 과학(Wissenschaft)과 교양(Bildung)의 통합, 그리고 셋째 자율성과 공동체의 통합이다.

곧 훔볼트는 교수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다. 연구, 교육, 인격성장 도모뿐만 아니라 사회봉사를 교수의 임무로 봤다. 스미스가 걱정했던 놀고먹는 대학교수는 훔볼트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하다. 훔볼트는 국가가 대학을 지원하되 간섭과 감독을 철저히 배제한 시스템을 제안했다. 그는 베를린 대학 창설에 돈을 댔던 프러시아의 왕에게 대학에서 손을 떼고 지원만 하라고 했고 왕은 당대 최고 학자였던 훔볼트의 제안을 따랐다. 대학개혁에서 감시와 시장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학문에 대한 사랑의 원리를 중심으로 한 자율성의 원칙을 우선시하는 것이 좋을까. 대학사는 스미스가 아니라 결국 훔볼트가 옳았음을 증명했다.

대학 ‘철밥통론’을 내세운 외부 감시와 경쟁 대신 학문에 대한 사랑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대학 ‘창조권력론’이 훔볼트 혁명의 핵심이다. 통제한다고 공부하지 않는다. 감시한다고 공부하지 않는다. 사랑해야 공부한다. 대학의 제1원리는 학문에 대한 사랑이다. 그러니 대학개혁을 학문을 사랑하는 교수들과 대학들에 맡겨라.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