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나쁜 이야기

입력 2025-11-17 00:35

하지 않아도 될 말은 왜 하게 되는 걸까. 어제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내가 꺼냈던 말들이 떠나지 않고 내내 주위를 맴돌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이야기는 해도 되고, 어떤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은지를 말을 꺼내기 전에 알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는 것이 쉽지 않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순간에 나는 이미 어떤 말을 하고 있다.

나만 아는 나를 들키고 만 것 같을 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내 이야기를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모르겠을 때도 그렇다. 잔잔한 표면을 뚫고 호수 밑바닥에서 꺼낸 돌멩이 같은 것. 그런 이야기들. 내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나의 연약함 같은 것을 꺼내어 내놓았을 때, 뒤돌아서면 대부분 후회한다. 부끄럽고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 기분 속에서 집에 와선 따듯한 물로 샤워를 했다. 샤워하고 나오니 생각이 안 났다. 내가 했던 말도, 사람들의 표정도. 슬프고 괴로운 마음이 덜했다. 쏟아지는 물을 맨몸으로 맞으면서, 물에 씻겨나가는 비누 거품을 보면서, 꺼내진 이야기는 꺼내져야 하는 이야기였을 거라고 여겼다. 상대방에게 전했던 말들은 사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게 취약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꺼내고 들여다보게 되었을 때, 다른 방향에 대한 상상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서윤후 시인의 시 ‘파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좋은 이야기를/ 꿈꾸게/ 만드는// 나쁜 이야기를// 우리는/ 다시 쓸 수도 있을까”. 나쁜 이야기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이 시에서 말하는 나쁜 이야기는 단지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좋은 이야기를 향해 있다. 어떤 종류의 ‘나쁨’은 거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음’을 생각하게 하니까. 나쁜 이야기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꺼내어 놓으면 ‘다시 쓸 수’ 있게 되기도 하니까. 그러니 나도 꺼냈던 말을 다시 써 볼 것이다. 다른 이야기로.

안미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