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스스로를 ‘방구석 음악인’이라 소개하던 31세 청년은 5년 만에 ‘올해의 음악인’이 됐다. 철학적 가사와 풍부한 밴드 사운드를 바탕으로 록 음악을 선보여온 싱어송라이터 이승윤(36)의 이야기다. 그는 지난해 정규 3집 ‘역성’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과 최우수 록 노래, 최우수 모던록 노래까지 3관왕을 차지했다. 10년 넘게 무명으로 지냈던 그가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주목받고, 음악적 역량을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다.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마운드미디어 사옥에서 만난 이승윤은 다음 달 여는 단독 공연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연말 공연 이후 잠시 쉬면서 앞으로의 삶을 고민해 보려 했는데,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은 뒤 공연이 급격히 많아졌다”며 “지난해에 버금갈 만큼 바쁜 한 해였고, 감사한 시간을 공연으로 다시 마무리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그가 숨 돌릴 틈 없이 바빠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20년 JTBC ‘싱어게인’에서 ‘30호 가수’로 우승하며 오랜 무명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이후다. 대중은 그에게서 오랜만에 고유한 음악 세계를 지닌 록 뮤지션의 면모를 발견했다. ‘물’, ‘소우주’ 등 싱어게인 무대에서 선보인 강렬한 밴드 사운드는 “기시감 없는 새로운 록의 형태”라는 평가를 받았고, 그를 단숨에 동시대 록신의 중심부로 이끌었다.
그 이후 5년은 그가 축적해온 역량이 응축적으로 드러난 시간이었다. 2021년 데뷔곡 ‘들려주고 싶었던’을 시작으로 정규 1집 ‘폐허가 된다 해도’, 정규 2집 ‘꿈의 거처’를 발표했고 지난해 정규 3집 ‘역성’을 연이어 내놓았다. 매년 정규 앨범을 내는 일정 속에서도 그는 국내외 여러 페스티벌과 대학 축제 무대에 서며 폭발적 에너지를 보여줬고, 선명한 음악적 색채를 확고히 다져왔다.
이승윤의 음악은 록을 기반으로 하지만 하나의 장르에 머물지 않는다. 한 앨범 안에서도 포크의 서정성과 밴드 사운드의 에너지, 치밀하게 편성된 오케스트레이션을 유기적으로 넘나드는 ‘대곡주의적 구성’이 두드러진다. 스스로를 ‘맥시멀리스트’라고 부르는 그는 잘 들리지 않는 세부 라인까지 채워 넣어야 곡이 비로소 완성된다고 믿는다. 그는 “기타 리프로 시작하는 곡을 녹음하면서 ‘왜 맛이 안 살지’ 고민했는데, 크게 들리지 않는 기타 라인을 먼저 깔아 넣자 전체가 살아났다”며 “받쳐주는 소리의 중요성을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밴드 사운드에 오케스트레이션을 더해 풍성한 질감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은 3집은 그의 음악적 정체성이 뚜렷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그는 직접 체코 프라하까지 찾아가 스트링 녹음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원래 웅장한 사운드와 대곡을 좋아하는데, 지금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해 보자는 마음이었다”며 “앨범 주제인 ‘잡음들의 이야기’에 맞춰 가능한 많은 악기와 소스, 멜로디 라인을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열린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은 그가 음악적으로 도약한 순간으로 평가된다. 그는 정규 3집 타이틀곡 ‘역성’으로 최우수 록 노래, 수록곡 ‘폭포’로 최우수 모던록 노래를 받으며 첫 동시 수상 기록을 세웠다. 수상 이후의 변화를 묻자 “없다고는 할 순 없다”며 “일부러 찾아보는 편은 아닌데 SNS에서 저와 관련된 게시물이나 영상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앨범은 명확한 주제의식을 중심에 두고 설득력 있게 전개되는 서사적 흐름을 갖는다. 그는 정규 1집을 발표하며 “반복되는 허무와 희망, 좌절과 용기의 뒤엉킴 속에서도 우리를 살게 하는 것들에 관한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9개의 수록곡은 음울한 염세주의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정서를 단계적으로 펼쳐내며, 앨범 전체를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처럼 읽히게 한다.
그의 가사는 스마트폰 메모장에 남긴 문장에서 출발한다. 일상에서 스친 감정이나 문장을 기록해뒀다가 작사 과정에서 사용한다. 3집 작업 때 메모장에 남아 있던 문장을 “다 소모했다”고 했다. 그는 “할 말이 없는데 쥐어짜고 싶지는 않아서 자연스럽게 말이 쌓이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메모한 내용을 묻자 한참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더니 “부끄러워서 알려줄 수 없다”며 웃었다.
동시대적 감각이 담긴 그의 노랫말은 폭넓은 공감을 끌어냈다. 그는 “작곡과 작사는 그 시기, 그 순간의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어떤 순간의 저를 사진 찍듯이 담아내는 느낌”이라며 “제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나의 한 부분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내 얘기를 쓸 수밖에 없는데, 구체적으로 상황을 묘사하기보다는 내 마음이 어땠는지를 표현하다 보니 많은 이들이 자신의 마음과 겹쳐 보게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의 음악은 무대에 서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 페스티벌 무대에서 관객의 반응 변화를 통해 자신의 음악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실감한다고 했다. 그는 “제 팬이 아니어도 ‘저 노래 알아’ 하며 함께 즐기는 분들이 생긴 것 같다”며 “올해 페스티벌 때 ‘어떻게 저 많은 사람이 내 노래를 들으러 와 있지’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지난 7월 서울 예스24 원더로크홀에서 열린 클럽 긱 공연 ‘폭주타임’은 러닝타임도, 세트리스트도 모두 정해지지 않은 ‘틀 없는 공연’이었다. 그는 이틀 동안 풀 밴드, 솔로, 어쿠스틱 파트를 넘나들며 총 86곡을 공연했고, 누적 러닝타임만 9시간 20분에 달했다. 그는 “타임테이블조차 없어서 저도, 스태프도 모두 긴장 상태였다”며 “쓸 수 있는 모든 장치를 동원했다. 무대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장면도 있었고, 어쩌다 보니 행위예술 같은 공연이 됐다”며 웃었다.
이승윤은 다음 달 12일부터 사흘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SOL트래블홀에서 열리는 단독콘서트 ‘어딘가’ 공연을 앞두고 있다. 그는 “이번 공연은 거창한 콘셉트 없이, 그냥 오셔서 신나게 놀다 가셨으면 좋겠다”며 “공연으로 2025년의 기쁨을 잘 매듭 짓고 싶다”고 전했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