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안보 분야의 한·미 협상 결과를 담은 ‘팩트시트(설명자료)’가 발표됐다. 통상은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이 큰 변화 없이 반영됐고, 안보는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와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를 문서화하는 성과가 있었다. 조선 분야에서 미국 상선과 함정을 한국에서 건조토록 추진한다는 대목과 2000억 달러 대미 투자의 용처에 상업적 합리성이란 조건을 명시한 부분도 긍정적이다. 자동차 반도체 등 수출에서 경쟁국에 불리하지 않은 여건을 갖추고 주한미군 등 동맹 현대화 문제를 정리하면서 경제와 안보의 최대 불확실성이 일단 걷히게 됐다.
이런 결과물은 사실상 우리가 돈을 주고 사온 것이다. 미국이 얻은 것은 팩트시트에 대부분 액수로 적혔다. 2000억 달러 대미 투자와 1500억 달러 조선업 투자 외에도 미국 군사장비 구매 250억 달러, 주한미군 지원 330억 달러, 한국 기업의 직접 투자 1500억 달러, 보잉기 주문 360억 달러 등이 명기됐다. 막대한 비용을 치른 만큼 협상 결과를 경제 재도약과 안보 강화로 이어가야 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팩트시트 타결을 발표하며 말한 것처럼 이제 시작이다.
이번 협상에서 얻은 가장 큰 기회는 핵잠 확보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의 모멘텀일 것이다. 북한이 건조 중이라 주장하는 핵잠은 동북아 안보 균형의 중요한 고리가 됐다. 원자력협정을 고쳐야 하는 농축·재처리도 원전 산업의 완성을 위한 숙원이었다. 민감한 문제여서 후속 협의 역시 지난할 것이다. 비확산 기류가 강한 미국 의회 승인이 필요하고, 특히 핵잠은 중국과의 외교 마찰 위험이 존재하며, 10년은 걸릴 터라 미국 정권의 향배와도 얽혀 있다. 이런 난관을 헤쳐갈 전략부터 치밀하게 준비하고 달려들어야 한다.
이 대통령은 팩트시트에 담긴 대미 투자 규모와 방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라 했지만, 안심하긴 어렵다. 어제 한국은행 총재 등이 외환시장 점검회의를 열어 구두 개입에 나섰을 만큼 이례적 고환율의 불안정한 장세가 뉴노멀이 됐다. 여기에 천문학적 액수의 대미 투자가 더해지면 달러가 빠져나가는 추세는 갈수록 가팔라질 테고, 그만큼 국내 투자가 위축되니 산업 공동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여러 차례 겪었듯 경제 위기는 한순간에 닥쳐온다. 불가피한 대미 투자의 각종 리스크를 면밀히 관리하면서, 과감한 구조 개혁을 통해 도약의 계기로 반전시키는 어려운 과제를 풀어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