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셰프도 반했다, 지역 장인에게 배우는 한국의 맛

입력 2025-11-17 02:16
지난 6일 신세계백화점의 여행 프로그램 ‘로컬이 신세계’ 전남편이 본격 시작됐다. 전남 담양군 양진재 종가 마당에 늘어선 1200여 개 장독대 앞에서 10대 종부 기순도씨가 전통 잠 담그기 문화를 소개했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장 냄새가 나시나요?” 지난 6일 전남 담양. 1200여개의 장독이 줄지어 선 마당에서 대한민국 식품명인 기순도씨의 아들 고훈국 고려전통식품 대표가 묻자 여행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햇살이 비치는 장독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이들의 표정에선 설렘이 묻어났다. 장 냄새가 그윽한 이곳에서 ‘로컬이 신세계’ 전남편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K컬처 다음 주자는 ‘K로컬’

전 세계적으로 K컬처가 주목받는 가운데 신세계백화점은 ‘K로컬’을 새 성장 축으로 삼고 전국을 누비며 지역 콘텐츠를 발굴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로컬이 신세계’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다. 지역 식재료·장인·문화유산을 깊이 체험하고 이를 프리미엄 다이닝과 팝업스토어 등으로 연결하는 참여형 ‘로코노미(로컬+이코노미)’ 프로그램이다.

2023년 9월 광주를 시작으로 홍성·태안, 김해, 통영, 안동을 거쳐 여섯 번째 여정이 담양에서 시작됐다. 이후 강진과 진도, 목포 일대로 이어진다. 이번 전남편 참가자 12명 중 6명이 재참여일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 해설사의 전문성과 세심한 진행, 흔히 볼 수 없는 콘텐츠 등이 이유로 꼽혔다.

참가자들은 한식의 기본이자 발효문화의 정수인 장을 직접 맛보고 담그는 체험을 이어갔다. 외국인 방문객들도 눈에 띄었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 ‘마스터셰프 이탈리아’에 출연했던 알리다 고타 셰프는 “한국의 장 문화가 궁금해 챗GPT부터 인스타그램까지 샅샅이 뒤져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마우리치오 로사짜 프린 셰프도 “발효와 제철이라는 한국 식문화의 특징을 요리 프로그램에서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마당엔 국내외 셰프들이 담가놓은 항아리들을 볼 수 있었다. 지난 4년간 약 40개 레스토랑 셰프들이 방문해 직접 장을 담갔다고 한다. 기순도 명인은 “장 담그기 문화가 지난해 유네스코에 등재된 뒤 외국인 방문이 더 늘었다”며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음식을 함께 나누면 금세 가까워진다”고 말했다.

죽녹원에서는 황지해 정원 작가의 안내에 따라 대나무 숲길을 걷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죽녹원과 소쇄원으로 이어진 일정에서는 남도의 자연과 정원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황지해 정원 작가와 함께한 죽녹원 산책에서 참가자들은 대나무숲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황 작가는 “우리 삶의 많은 문제가 자연과 멀어진 데서 비롯된다”며 “꾸미려 하지 않고 좋은 경치에 정자를 툭, 두는 게 남도의 미학”이라고 설명했다. 소쇄원에서는 국가유산청과 협업해 판소리·가야금 병창 공연이 진행됐다. 명승과 전통 정원에서 옛사람들이 즐기던 감상법과 미학을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 프로그램이다.

소쇄원에서 열린 국악 공연을 참가자들이 여유롭게 관람하는 모습이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로컬 여행이 지속 가능하려면 그 지역이 가진 문화적 자산도 함께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며 “미식 콘텐츠에서 나아가 지역이 가진 고유한 문화유산과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체험·유통 아우른 ‘로코노미’ 상생 모델

로컬이 신세계는 단순히 여행에 그치지 않는다. 여행 이후 팝업스토어로 지역 식재료를 소개하고 판매 수익 일부를 지자체에 환원하는 상생 모델을 만들고 있다. 신세계는 새로운 지역 특산 식재료를 발굴해 소비자에게 선보이고 지역 농가에는 안정적 판로를 제공한다. 광주가 떡갈비의 원조이자 ‘고려인 마을’을 품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선보인 중앙아시아 전통 요리 ‘코프타’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태안에서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아말피 레몬’을 발굴해 신세계마켓 단독 판매로 연결했다. 이탈리아에서 재배되는 품종을 한 농부가 국내에 들여와 재배했지만 판로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고객들에게는 새로운 식재료를 소개하고 농장주님께는 유통 경로를 열어준 대표적인 상생 사례”라고 말했다.

지난해 로컬이 신세계 팝업은 29.8%의 매출 신장률을 보였다. 1기 프로그램 이후 지방시대위원회 세미나 및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로컬100 세미나 등에서 프로젝트가 소개되면서 지자체들의 러브콜도 이어졌다. 내년엔 로컬 식재료를 테마로 팝업 스토어를 열 예정이다. 지역 공방과 장인이 만든 공예 상품을 명절 선물세트로 선보이는 등 로컬 콘텐츠 사업의 확장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외국인의 지역 관광 수요가 증가하면서 신세계는 외국인을 겨냥한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지난 4일까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개최지였던 경북 경주를 찾은 외국인 방문객은 20만6602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5.6% 늘었다. 신세계는 이를 기회로 보고 내년 하반기 한국의 로컬 문화·미식·헤리티지를 경험하는 K로컬 인바운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담양=신주은 기자 ju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