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안전위원회가 13일 고리 원자력발전소 2호기 재가동을 결정하면서 수명이 끝난 원전이라도 안전성이 확보됐다면 에너지원으로 계속 활용해야 한다는 ‘원전 실용주의’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고리 2호기 재가동 여부는 이재명정부 원전 정책의 가늠자로 주목을 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가동 기간이 지난 원전도 안전성이 담보되면 연장해 쓰고,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합리적으로 섞어 활용하겠다”고 언급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안전성이 담보된다면 계속운전도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 최장수 원전인 고리 2호기는 폐쇄와 재가동 사이에서 3년 넘게 진통을 겪었다. 당초 고리 2호기는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기조 속에 2023년 4월 8일 영구정지 수순에 들어설 예정이었다. 그러나 윤석열정부 출범으로 탈원전 정책이 폐기되며 수명 연장으로 전환됐다.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이 2022년 4월 계속운전 심사 절차에 착수했지만 이듬해 4월 운전허가기간 만료로 1983년 이후 40년 만에 가동이 정지됐다. 이후 지난 3월부터 9월까지 원안위 전문위원회 심사와 세 차례 전체회의를 거쳐 가동 중단 3년반 만에 계속운전이 최종 허가됐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재가동 논의가) 안전성에 대한 평가에만 집중됐다면 결론은 빠르게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업계에선 계속운전 심사를 앞둔 나머지 원전 9기의 재가동 여부도 향후 빠르게 결론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원안위는 지난 9월 국회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가동 중단 상태인 고리 3·4호기는 내년 상반기까지, 오는 12월과 내년 9월에 가동을 멈추는 한빛 1·2호기는 내년 하반기 심사를 마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목표대로 심사가 진행된다면 2027년부터 2029년까지 가동 중단 예정인 한울 1·2호기와 월성 3·4호기는 설계수명 만료 전 재가동 허가가 날 수 있다.
노후 원전 재가동으로 인공지능(AI) 산업 확대로 인한 전력 수급 불안도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수원에 따르면 고리 2호기를 비롯해 2029년까지 재가동 심사를 받는 원전 10기의 발전 용량은 총 8.45기가와트(GW)로, 전체 원전 발전 용량(26.05GW)의 3분의 1에 달한다. 한수원은 “8.45GW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려면 11기 전력수급기본계획상 두 배 이상의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증설이 필요하다”며 “반도체 및 AI 산업 확대 등에 따른 전력 공급 불안전성이 대폭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원안위 결정으로 고리 2호기 수명은 2033년까지 연장됐지만 실제 가동 가능 기간은 7년 정도에 불과하다. 한수원은 현재 진행 중인 고리 2호기 설비 개선을 마친 뒤 안전성을 최종 확인받고 내년 2월 재가동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노후 원전 재가동에 따른 안전성 논란도 남아 있다. 시민단체인 에너지정의행동은 원안위 결정 직후 성명을 내고 “핵발전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포기한 결정이며 절차적 위법에도 강행한 위헌적 결정”이라며 “정부는 이번 결정을 제지하고 노후핵발전소 영구정지를 선언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일부 환경단체 회원들은 원안위 심의 현장을 방청하며 “심사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