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쪽(현 정권)에선 지우려 하고, 우리는 지울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수시로 많이 부대껴 왔다.”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은 사의 표명 당일인 12일 저녁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국민일보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노 대행의 소회는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포기 결정 과정에서 현 정권으로부터 적지 않은 부담감을 느꼈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노 대행은 이 발언에 앞서 “전 정권이 기소해놨던 게 전부 현 정권 문제가 돼 버리고, 현 검찰청에서는 저쪽(현 정권) 요구사항을 받아주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조율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번 항소 포기와 관련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신중 검토’ 의견을 전달했을 뿐 수사지휘권 행사는 없었다”는 법무부 입장과는 확연한 온도 차가 있는 것이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노 대행이 항소 포기 경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사의를 밝히면서 법무부와 검찰 간 ‘외압 의혹’ 진실 공방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노 대행은 전날 “자세한 입장은 퇴임식 때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앞서 노 대행은 지난 10일 대검 간부 비공개 면담에서 ‘법무부가 몇 가지 선택지를 줬는데 다 항소 포기하라는 의견이었다’거나 ‘차관이 장관에게 수사지휘권 발동을 요청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행은 지난 9일 “법무부 의견을 참고했다”는 입장을 밝힌 뒤 항소 포기에 이른 구체적 경위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반면 정 장관은 지난 10일 출근길 문답에서 “항소 여부는 신중하게 알아서 판단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전날에는 “(수사)지휘하려고 했다면 서면으로 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진수 법무부 차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예산소위에서 “(노 대행에게) 한 차례 전화했다”면서도 “사전 조율이고 협의 과정이며 수사지휘권 행사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이 차관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적이 없다”며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법조계에서는 외압인지 판단하는 것은 당사자 입장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이었다면 소신 의견을 낼 수 있었겠지만, 권한대행은 그에 비해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위치”라며 “사실상 외압으로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지 않고 비공식적 방식을 선택한 게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이서현 구자창 기자 hy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