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 한 초등학교 앞, 글 읽는 소리(오· 唔)와 차(다·茶)가 있는 공간을 지향하는 서점 ‘책방오다’가 자리하고 있다. 이름부터 조용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책방을 지키는 이는 이야기가있는교회 강윤성 목사(44). 광주에서 대형교회 부목사로 사역하다가 2023년 화순으로 내려와 교회와 책방을 열었다.
처음부터 ‘로컬 사역’(지역 사역)을 계획한 것은 아니다. 강 목사는 1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코로나 시기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우고 싶어 가족과 함께 화순에 정착한 것이 출발이었다”고 소개했다. 책방오다는 지역 아이들이 세상과 연결되는 작은 배움터이자 ‘안전한 공간’을 바란다. 아이들이 직접 책을 골라 가져가도록 하는 ‘책사줄게 프로젝트’도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 8월 SNS에 글을 올린 지 열흘 만에 약 50만원의 후원금이 모였고, 두 달 뒤엔 150만원을 넘어섰다. 후원자는 대부분 얼굴조차 모르는 시민들이다.
강 목사는 지역 사회 소멸 위기에 책이 작지만 실질적 대안이 된다고 본다. 지역 소멸 요인 중 하나인 교육 공백을, 책을 중심으로 한 일상적이고 지속 가능한 활동이 메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에 책방을 중심으로 독서모임과 북토크, 청소년 활동을 꾸준히 실험하고 있다. “지역에 있어도 책은 넓은 세상을 향한 창을 열어줍니다. 아이들이 책을 통해 상상하고 꿈꾸면 지역의 미래도 함께 자라지 않겠습니까.”
전통적 교회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이라고 지역 사랑이 적지 않다. 15일 열리는 ‘갓플렉스 시즌6 in 광주’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근희(41) 광주 월광교회 청년교구 담당 목사도 그중 하나다. 박 목사는 이번 갓플렉스에 참가할 청년들을 향해 “환경과 상황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계기가 되길 기도한다”면서 “답을 모른다고 조급해하지 않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박 목사의 이런 조언엔 그가 지나온 삶의 흔적이 묻어난다. 그는 청년기에 혈액암 판정을 받고 5년간 투병했다. 당시를 돌아본 박 목사는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제 삶을 이끄신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대로 진학한 뒤 CCC 순장으로 활동하며 신학의 길을 고민했지만 가족의 반대가 있었다. 그는 ‘온 가족이 찬성하면 가겠다’고 기도했었고, 예기치 않은 질병이 반대하던 가족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박 목사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옮길 마음은 없을까. 그는 “사람이 길을 계획할지라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며 “광주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먼저 사랑하라는 부르심에 집중하고 있다. 중요한 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에 터를 두고 로컬 사역에 대한 열망을 키우는 신학생들도 있다. 2021년 출범한 광신대 농어촌선교동아리 ‘에움아리’가 대표적이다. 지름길의 반대말인 ‘에움길’에서 이름을 따, 빠른 시대에 느리고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회원들은 농어촌 사역 이론을 공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농촌 현장 실습과 지역 봉사, 마을 목회 탐방 등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회원인 김진원 전도사는 “서울에만 하나님이 계시냐”는 아버지의 말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해 전남 장흥에서 단기선교를 하며 아이들에 비해 사역 인력이 부족한 상황을 확인했다. 당시 동역자로부터 “김치 한 포기를 받더라도 이런 곳에서 사역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김 전도사는 “그때를 계기로 지역 사역에 관심을 두게 됐다”며 “고향 보성에서 북카페 형태의 교회를 열어 늦은 시간까지 머무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아리 회장 백형진 전도사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머리 둘 곳 없었던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순교자들의 삶이 자꾸 떠오른다”며 “기복신앙과 성장주의에서 벗어나 느리고 어렵고 좁은 길을 기쁨으로 걷고 싶다”고 말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