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분노를 발할 만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 아닌 용서를 선택한 사람, 바로 요셉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요셉은 어떻게 자신에게 일어난 악을 선으로 고백할 수 있었을까요.
요셉은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결해 생각했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유혹할 때도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라고 말했습니다.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꿈을 해석해 달라고 했을 때도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창 40:8)라고 답했고 바로 앞에서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 41:16)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요셉은 아들들의 이름도 하나님께 연결했습니다. 므낫세는 ‘하나님이 내 모든 고난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에브라임은 ‘하나님이 나를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아래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의도적으로 하나님 뜻 안에서 해석했습니다. ‘나를 해한 형들도 결국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내가 종으로 팔려왔다. 그렇다면 모든 선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일을 내게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자신의 인생 핸들을 하나님이 주신 꿈과 말씀에 내어주었습니다. 고난의 순간을 자신의 이야기로만 품지 않고 하나님이 써 내려가시는 더 큰 이야기 안에 두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결코 자신의 인생을 가해자인 형들을 향한 원망에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요셉이 고통받을 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첫째 하나님은 그를 높이시기 전에 먼저 그와 함께 계시며 그를 낮추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다듬어 사용하십니다. 이것이 고난의 신비입니다. 둘째 그 고난의 과정 끝에 그를 총리로 세우셔서 형제들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셋째 야곱의 식솔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다른 생명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고난받는 의인을 살리시는 여정에서 그와 함께 있는 많은 악인에게도 긍휼을 베푸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공동체 전체를 붙들고 이끄시는 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본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는 유익은 무엇일까요. 요셉은 분노를 표출하고 처벌할 권리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았고, 그 권리를 내려놓음으로써 오히려 형들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명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오는 ‘악’으로 인생을 망치기보다 하나님의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분노를 이기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아는 데 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용서를 선택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앎으로 분노의 길목에서 밤이나 낮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주님을 찬양하며 용서를 선택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조성용 목사 (광주양림교회)
◇광주양림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 교회입니다. 1904년 12월 25일,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 벨 목사의 예배로 시작된 광주의 어머니 교회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세대를 이어가는 교회입니다. 조성용 목사는 건국대와 총신대학원, 고신대학원에서 공부했고 경기도 열린교회와 홍콩애진교회 사역 이후 광주양림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