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타워 붕괴 사고 관련 기사를 쓰며 ‘위험의 외주화’라는 표현을 언제까지 써야 하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위험의 외주화는 말 그대로 인명 사고 위험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떠넘긴다는 의미다.
이번 사고도 본격적으로 누가 누구에게 어떤 위험을 떠넘겼는지 책임을 가리는 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발전소를 운영한 한국동서발전과 보일러타워 해체 공사를 담당한 HJ중공업, 그리고 하도급으로 참여한 코리아카코 등이 모두 수사 대상에 올라 조사받을 것이다. 이 중 일부는 재판에 넘겨져 유무죄의 심판대에 설지 모른다.
책임을 따져 묻는 작업은 지난하고 복잡하다. 반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건 빠르다. 이번 사고도 발주처와 수주를 따낸 하청, 하도급으로 참여한 재하청 간의 안전 관리·감독 의무는 누구에게 있는지를 놓고 팽팽한 법정 공방이 이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원청의 사고 책임을 더욱 강화한다거나 처벌 수위를 높이는 식의 법 개정이 추진될 수도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 질책, 수사와 재판을 거쳐 엄중한 판결이 선고되고 나면 사고의 아픔은 유족의 가슴 속에 남은 채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지는 순서를 밟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다 마치면 위험의 외주화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고민의 답을 찾는 와중에 만난 전문가들은 “문제는 위주화가 아닌 위험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그 자체”라고 입을 모았다.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의 말이다.
“문제는 외주화 자체가 아닙니다. 전문성 측면에서 외주는 필요합니다. 국민일보 건물에도 승강기가 있을 겁니다. 승강기 유지보수를 기자들이나 직원들이 하는 게 낫겠습니까, 전문 업체가 하는 게 낫겠습니까? 진짜 문제는 원청이든 하청이든 안전 관리를 누가 어디부터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저희 같은 전문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불분명하고 엉성해요.”
사고를 예방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고 강하게 처벌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리고 외면하는 건 가장 쉽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인천과 제주를 오가는 배편은 12년째 끊겨 있다. 지난해 12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무안공항도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우리는 고의든 아니든 사고를 외면하는 식으로 사고를 극복했다는 착각을 반복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고에 경종을 울리는 측면에서 엄한 처벌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처벌 자체는 사고 예방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지난해 6월 리튬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근로자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사건에 대해 법원은 최근 대표이사와 총괄본부장에게 각각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대 형량이었다.
아리셀 1심 재판부는 선고 이유에서 기업의 이윤 극대화 추구 속에 노동자 안전은 방치되고 있는 우리 산업 구조의 현실을 질타했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더라도 그동안 벌어 놓은 돈으로 합의를 하면 선처를 받는 악순환을 뿌리 뽑지 않는 한 산업재해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재판부는 “산업재해의 빈번한 발생 현실에 비춰보면 형벌의 일반 예방 효과가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고 보인다”고 꼬집었다.
판결문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형벌만이 정답은 아니고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병행돼야 한다”고도 했다. 법원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중형 선고라는 최대한의 조처를 하지만, 예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제도적 뒷받침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형법학자 프란츠 폰 리스트가 남긴 ‘최선의 사회정책이 최선의 형사정책’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법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이에 다른 변화는 감감무소식인 듯하다. 이번 사고도 늘 그랬듯 ‘인명 수습이 먼저’로 시작해 ‘사법 절차가 진행 중’으로 어영부영 넘어가는 수순이 반복되는 것일까. 동서발전은 참사 8일 만에 사고 원인을 명확히 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과연 이번에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 수 있을까. 그 대책은 누가 언제까지 어떻게 마련한다는 것인가. 우리는 위험의 외부화라는 말을 하면서 그 위험의 바깥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양민철 경제부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