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심자복의 이천국내기국야(虛心者福矣 以天國內其國也·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자복의 이기장수위야(哀慟者福矣 以其將守慰也·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일본의 천년고도 교토의 단풍이 한창이다. 일왕들이 머물던 교토교엔의 북쪽에 기독 사학 도시샤대(同志社大)가 있다. 교토교엔 동쪽에도 도시샤대 설립자이자 일본 조합교회를 창설한 니지마 조(1843~1890)의 저택이 남아 있다. 그의 옛 저택 1층에는 ‘조선의 마게도냐인’ 이수정(1842~1886)의 친필 휘호와 더불어 그가 처음 복음을 접한 쓰다 센(1837~1908)의 산상수훈 족자 속 저 문구가 나온다. 한국 기독교 선교 140주년을 맞은 2025년이 다 가기 전에 산상수훈을 담은 이 족자를 보고 싶어 비행기에 올랐다. 간사이공항에 내린 뒤 하루카 특급열차를 타고 교토에 도착했다.
이수정이 흘끗 봤던 이 족자가 바로 조선 선교의 시작이다. 전남 곡성군 옥과면(전라도 옥과현) 출신으로 민영익의 문하생이던 이수정은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를 살린 공로로 국비 유학생 자격을 얻는다. 일본에서 농업을 공부해 조선을 부강하게 만들 것이라 다짐한 그는 일본 초기 그리스도인이자 근대 농업의 창시자인 쓰다의 집을 방문해 면담하던 중 바로 이 족자를 보게 된다. 유불선에 관심 있던 이수정은 그것과는 다른 한자어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복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허심자 애통자 온유자 기갈자 긍휼자 청결자 화평자 박해자가 복을 받는다는 건 무얼까. 궁금증이 생긴 그는 쓰다로부터 한문으로 인쇄된 성경을 건네받아 읽게 된다. 마태복음 1장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로 시작하는 이야기에 양반으로서 족보를 중시하는 점에 공감한 그는 성경을 읽어나가며 마음이 뜨거워지고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체험을 한다.
이후 일본에서 세례를 받은 이수정은 성경을 국한문 혼용으로 번역하는 일에 열중한다. 동시에 미국 교회들에 조선으로 선교사를 파송해 달라는 편지를 쓰게 된다. 마치 사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나 이수정은’으로 시작하며 조선 선교를 호소한 글은 북미의 여러 크리스천 매체에 실리게 되고, 그 이듬해 미국 교회는 선교사 파송을 결정한다. 미 북장로교의 호러스 G 언더우드, 감리교의 호러스 G 아펜젤러 및 메리 스크랜턴과 아들 닥터 윌리엄 스크랜턴은 개척선교사로 1885년 2월 일본에 입국해 조선 선교를 준비하다가 드디어 일본 땅에서 이수정을 만난다. 이수정은 자신이 번역한 성경을 선발대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에게 전달했고, 그들은 이를 품에 안고 그해 4월 부활주일에 제물포에 상륙하게 된다.
쓰다의 족자는 마태복음 5장을 담고 있는데 발문에 적힌 연도를 보니 이수정이 방문하기 2년 전 작성된 것이다. 원래 도쿄에 있어 마땅한데 교토의 니지마 저택에까지 오게 된 이유는 일본의 초기 그리스도인이자 동지였던 니지마와 쓰다가 조선의 마게도냐인 이수정을 그리워하며 관련 유물을 이곳으로 한데 모았기 때문이다. 도시샤대 교정에는 그리스도인 시인인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도 나란히 들어서 있다.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신앙의 신비로 시간과 장소를 넘어 한데 모여 있는 일이 종종 있다.
이수정은 앞서 성경을 처음 읽을 때 꿈을 꾼다. 키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함께 가슴에 무언가를 품고 다가오길래 ‘그것이 무엇이오’ 하고 물으니 ‘당신 나라에 가장 중요한 책이오’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중요한 책은 다름 아닌 성경이고 훗날 만나게 되는 아펜젤러는 장신으로, 언더우드는 단신으로 유명하다. 저서 ‘이덕주의 산상팔복 이야기’를 통해 이를 소개한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명예교수는 “그렇게 이수정은 초기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선교의 문을 안쪽에서 연 주인공이 됐다”고 평가했다. 아펜젤러·언더우드 내한 140주년을 보내며 자칫 잊기 쉬운 우리쪽 선교의 역사도 함께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성규 종교부장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