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여성의 알바 생활] 알바 오빠

입력 2025-11-15 00:31

알바를 하며 주로 의류 포장 공장을 다녔다. 많은 곳이 공장 집적단지 안에 있었다. 의류 포장 공장은 섬세하고 손이 빠른 여자 알바들을 선호했다. 그런데 7명쯤 여자가 일하면 1명쯤은 남자가 배치됐다. 반품된 옷이나 포장된 옷이 담긴 박스를 들거나 옮겨야 하는데, 무거웠기 때문이다. 남자 알바들이 무거운 박스를 날랐다.

요즘 같은 가을날 집적단지 바깥쪽에 있는 의류 포장 공장에 가게 됐다. 아침에 출근해 안으로 들어가니 공장 안 시설이 모두 새것이었다. 알바들을 맞은 반장은 새로 시작한 회사라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했다. 군데군데 희끗희끗해 보이는 짧은 머리에 특전사 마크가 붙은 티셔츠를 입은 중년 남성이었다. 말할 때 목울대가 꿀렁꿀렁 울리는 전형적인 마초형 남자였다. 나와 언니들은 한눈에 이 회사가 새로 시작해 작업 공정을 잘 모른다는 것을 눈치챘다.

우리는 오래 일한 숙련자들이었다. 반장이 지시를 하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어 알아서 작업을 시작했다. 다들 손이 안 보일 만큼 빠른 솜씨였다. 반장은 눈이 커져 지켜봤다. 점심을 먹으며 반장이 전투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린 특전사 출신이라는 걸 알았다. 어쩌면 자그마한 티셔츠를 접어 포장하는 일이 사소해 보였을 것이다.

오후에는 비닐 포장한 의류들을 택배로 보내는 박스 포장 작업을 했다. 그때도 언니들과 나는 숙련된 솜씨로 박스 접착 기계를 돌렸다. 반장은 눈이 커져 우리를 쫓아다녔다. 전투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린 마초 따위는 잊어 버렸다. 그보다는 먹고사는 일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우리가 포장한 무거운 박스들을 번쩍번쩍 들어 나르며 새로운 일을 배우는 데 눈을 빛냈다.

종이 장난감을 조립 포장하는 공장에도 갔다. 마분지 종이들을 접어 장난감으로 조립하는 작업이었다. 7명쯤 여자와 1명의 남자가 함께 일했다. 그때 남자 알바도 흰머리가 군데군데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 깔끔한 옷차림에 말투가 정중했다.

나는 무거운 마분지를 조립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마분지를 조립해 옮기려 하면 그분이 손을 휘저으며 못하게 했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모든 언니들이 무거운 걸 못 들게 했다. 힘든 건 자신이 해야 한다고 나섰다. 신사였다.

보통 공장에서 일하다 보면 여자라도 무거운 걸 척척 든다. 그런데 못 들게 하는 남자분을 만나니 대접받는 듯 기분이 좋았다. 점심을 먹으며 그분이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했다는 걸 알게 됐다. 퇴직금도 많고 생활이 어렵진 않을 텐데 왜 나왔느냐고 물어봤다. 공장 일 한다고 무시도 당하는데 말이다.

물론 해외여행도 가고 골프도 치지만 이렇게 공장 나와서 일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라고 중년 남자 알바는 말했다. 세상에 무시당하는 이들이 많은데 좀 당하면 어떠냐고 웃었다. 나중에 나간 대형 물류센터에도 그런 중년 남성들이 많았다. 오후에 일하는데 그분이 무거운 마분지를 척척 들어 가져다줬다. 우리는 정중하고 힘 좋은 그분을 함께 크게 불렀다. 오빠!

김로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