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석기 (7) 한국인 재소자의 마음 흔든 복음방송 사역 간증

입력 2025-11-13 03:06
2001년 오네시모선교회가 주최한 청소년 여름캠프 기념 사진.

우리는 3년에 한 번씩 차를 바꾸어야 했다. 1년에 6만 마일을 달렸다. 어느덧 재소자들과 한 몸이 되었고 그들의 가족과도 하나가 되었다. 토요일에 드물게 집에서 쉬는 날이면 죄책감이 들었다. “이렇게 쉬어도 되나?” 좋은 음식을 먹으면 형제들이 떠올랐다.

내가 산타아나에서 사역을 시작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복음방송에서 사역 간증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방송에서 처음 간증을 하다 보니 긴장이 되었지만 주님의 은혜를 전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증언했다.

며칠 뒤 롱비치에 있는 터미널 아일랜드 연방 교도소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곳에서 수감자들의 신앙 지도를 맡고 있는 종교 담당 교역자 압둘이라는 분이었다.

그곳에 있는 한국인 한 분이 내 간증을 듣고 꼭 자신을 방문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 교도소는 사방이 태평양으로 둘러싸여 마치 영화 ‘빠삐용’의 배경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처음 만난 그 형제는 내게 정기적으로 방문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기꺼이 수락했다. 나와 아내는 매주 한 번씩 그 형제를 찾아가 개인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그 형제는 다카하시라는 일본인도 내게 소개하며 함께 복음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두 사람과의 성경공부를 이어 갔다. 1년이 흐른 뒤 교역자 압둘이 우리에게 팀을 꾸려 정식으로 사역해줄 것을 요청했다. 나는 15명의 봉사자를 모아 매주 찬양과 함께 예배하기 시작했다. 압둘은 특별히 우리가 김치를 가져가는 것을 허락했는데, 외국인 재소자들이 김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이를 통해 많은 이들이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재소자들은 큰 은혜를 받았고, 압둘은 한국인들의 열정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 사역팀은 교도소 안에서 재소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엔 교도소장의 특별 허락으로 30인조 오케스트라가 준비되고, 광장에서 큰 예배가 열렸다. 그날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분이 색소폰으로 ‘대니 보이(Danny Boy)’를 연주했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재소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많은 이가 모여들었지만 관리상의 문제로 아쉽게도 그 행사는 한 번으로 끝났다.

우리 선교회는 매년 한 번씩 한인 커뮤니티의 청소년 범죄 예방을 위한 리디렉션(Redirection) 프로그램을 산속에서 7일간 진행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고 복음을 전하며 삶의 롤모델을 제시하는 사역이었다. 특히 연방교도소에서 진행한 초이스(Choice) 프로그램은 매우 인상 깊었다. 청소년들이 재소자들과 마주 앉아 그들의 간증을 듣고 “너희는 절대 우리처럼 되지 말라”는 고백을 직접 들으며 충격을 받고 삶을 돌이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커뮤니티에도 큰 유익을 주었다. 연방 교도소는 매년 봉사자들의 수고를 격려하기 위해 감사 연회를 마련했다. 우리도 초청받아 귀한 교제를 나누었는데 그날 나는 큰 은혜를 받았다. 미국의 자원봉사 정신이 단순한 선행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리=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