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일탈 공간 보드게임 카페, 제재·관리는 미약

입력 2025-11-22 00:05
게티이미지뱅크

14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유명 보드게임 카페 체인점. 내부에는 교복을 입은 10대 남녀 학생들로 북적였다. 계산대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1~2층으로 구분된 수십 개의 ‘간이 게임룸’이 나타났다. 입구마다 커튼이 설치돼 있었다. 창문은 안쪽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불투명 시트지가 붙어 있었다. 커플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손을 잡은 채 차례로 그 공간으로 들어갔다. 보드게임 카페 직원은 “일부 청소년의 과도한 스킨십 관련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며 “현장에서 이를 제지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할리갈리, 체스 등을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 카페가 10대 청소년 일탈의 새로운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청소년 출입이 자유롭지만 불투명한 창과 커튼으로 인해 외부에서 내부를 볼 수 없는 구조가 많다. 여성가족부(현 성평등가족부)는 2023년 청소년들이 밀폐된 공간에서 성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을 우려해 청소년의 룸카페 출입을 금지했다. 이후 보드게임 카페가 대체 공간으로 10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드게임 카페도 룸카페와 비슷한 형태의 영업을 지속하면서 청소년들이 유해 환경에 노출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트지에 커튼… 밀폐된 공간
서울 한 보드게임 카페의 게임룸이 14일 커튼과 불투명 창으로 가려져 있다. 이 같은 보드게임 카페는 청소년 일탈의 온상이라는 지적을 받지만 법적 규제 대상으로 묶이지는 않고 있다.

서울 성동구 한 고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또 다른 보드게임 카페의 구조도 비슷했다. 벽 끝에 자리한 넓은 방은 입구에 긴 커튼 하나만 있고 창은 아예 없는 형태였다. 내부에는 넓은 소파가 놓여 있었으며 직원이 커튼을 열지 않는 한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구조였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2층 게임룸은 안쪽에서 커튼을 닫으면 아래층에서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아 사실상 밀폐된 공간이었다. 바닥은 성인 남녀가 누울 수 있을 만큼 넓었다. 해당 보드게임 카페는 전국에 40여개의 지점을 운영 중이다.

10대 청소년들은 보드게임 카페의 은밀한 내부 공간이 인기 요인이라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고등학교 1학년 A양(16)은 “몇몇 친구들은 방과후 보드게임 카페 데이트를 자주 한다”며 “공간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아 스킨십을 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얘기들이 나온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중학교 2학년 B군(14)은 “얼마 전 보드게임 카페에 갔을 때 옆방에 교복을 입은 남녀가 들어갔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 직원에게 알렸다”며 “하지만 해당 직원이 개인적인 공간이어서 커튼을 열고 제지하기는 어렵다고 말해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떴다”고 전했다.

보드게임 카페 직원들은 청소년들이 일탈 행동을 하더라도 막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한 직원은 “남녀 학생 단둘이 들어가면 커튼을 꼭 닫는 경우가 많다”며 “방 안에 CCTV가 없고 직원들이 지나다니면서 내부를 볼 수도 없기 때문에 민원이 들어오지 않는 한 제지하기 어렵다”고 했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청소년들의 밀폐된 보드게임 카페 이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한 중학교 수학 교사는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보드게임 카페 문제에 대한 우려가 크다”며 “학교에서 관련 지도를 하지만 한계가 있다. 업소들이 법의 사각지대를 교묘히 이용하면서 청소년들의 일탈 장소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법 사각지대… 일탈 예방에 한계

성평등가족부의 청소년 출입·고용금지 업소 결정 고시에 따르면 밀폐된 시설인 경우 욕조나 시청기기 등 특정 설비를 갖추고 성 관련 행위를 유발할 우려가 있으면 모두 청소년 출입금지 업소로 지정된다. 하지만 보드게임 카페는 밀폐된 시설이고 성적 일탈을 부추길 위험이 있지만 고시에 나열된 특정 설비를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소년 출입금지 업소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보드게임 카페는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상황이다.

룸카페는 잠금장치를 설치해 밀실 구조를 만들고, 침대를 배치하는 등 사실상 숙박시설에 가까운 형태로 운영됐다. 특히 청소년들이 술을 마시거나 성적 행위를 포함한 부적절한 행동을 해 논란이 있었다. 이후 룸카페는 청소년 출입·고용금지 업소로 지정됐다.

반면 보드게임 카페는 법적으로 금지 업소로 분류되지 않아 정부가 직접적인 점검이나 시정명령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성평등가족부 관계자는 “보드게임 카페는 금지 업소가 아닌 자유 업종이기 때문에 임의로 커튼을 떼고 창을 투명하게 교체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며 “두 달마다 지자체와 협력해 보드게임 카페를 포함, 청소년 출입 시설들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보드게임 카페를 청소년 출입금지 업소로 지정하는 것만으론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권일남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커튼 등으로 시설이 밀폐된 보드게임 카페는 청소년들의 사회적 물의나 일탈 행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관련 법적 규정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청소년들이 건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칸막이나 커튼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업주들도 철저한 자본 논리보다 청소년 보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며 “지자체나 교육 당국도 점검과 관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차민주 기자 la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