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를 의무적으로 소각하도록 하는 내용의 3차 상법 개정이 논의 중이다. 이는 자사주가 경영권 안정화 수단으로 활용되는 등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일부 기업이 자사주를 주주 공동의 이익 관점에서 적절치 않은 방식으로 활용한 예도 있다. 이러한 측면만 본다면 자사주 의무 소각은 논의해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자사주의 순기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11년 개정 상법 전에는 자사주 취득을 엄격히 금지했다. 자본금 유지 원칙에 반하고 주주와 채권자의 이익 침해, 주주평등 원칙에 반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개정 상법은 자사주 취득을 원칙적으로 허용했다. 자사주에는 우려를 웃도는 순기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사주는 기업의 자본정책 운용에 영향을 미치며, 회사나 주주 이익 제고에 이바지하는 수단이 된다. 특히 자금 여력이 충분치 않고 성장 잠재력이 큰 중소 중견 기업은 자사주를 활용해 사업 재편이나 인수·합병(M&A) 등을 성공할 수 있다. 일본은 자사주를 대가로 하는 대규모 M&A 촉진을 위해 산업경쟁력강화법을 개정한 데 이어 회사법 개정까지 논의하고 있다. 미국, 유럽에서 대규모 M&A에 자사주를 적극 활용하는 것을 참고한 것이다. 성장 중인 기업은 인재 확보와 보상, 유동성 확보 수단으로 자사주를 활용한다. 최근 자사주 처분결정 공시 현황을 보면 임직원 보상 목적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오늘날에는 인적 자본 투자와 유동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산업 패러다임 전환과 경제 환경 급변 속에서 기업의 선제적 사업 재편이 강조되며, 이에 대응할 인재 확보 역시 중요한 과제가 됐다. 이러한 현실과 자사주의 활용 가능성을 생각하면 의무 소각은 기업에 필요한 자본정책을 수립 운영하고 성장동력 확보의 통로를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 등에 관한 개정 상법과의 관계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사는 회사와 주주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하며, 이로부터 자사주의 남용적 활용이 제한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자사주 활용에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자사주 처분에 관한 상법 규정 미비와 불공정한 처분의 효력에 관한 법원의 태도를 시정하는 방안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사주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함을 이해해야 한다. 자사주의 남용 우려나 일부 사례만을 들며 충분한 논의 없이 의무 소각부터 말하는 것은 의도한 바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자사주 문제의 본질은 ‘보유’ 자체가 아니라 ‘활용’에 있다. 그렇다면 자사주 논의는 의무 소각이 아니라 남용 억지부터 시작함이 바람직하다. 급변하는 경제환경 속에서 자사주의 효율적 활용이 예상되는 점도 있음을 생각할 때 균형 잡힌 시각에서 자사주 활용 관점의 충분한 논의가 먼저 이뤄지길 기대한다.
권용수 건국대 KU글로컬혁신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