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보다 수뇌부에 화살, 사라진 구심점… 과거와 다른 ‘검란’

입력 2025-11-12 02:05
연합뉴스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가 ‘검란(檢亂)’ 형국으로 치닫고 있지만 역대 정부와 검찰의 갈등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 검란은 대부분 정부의 하명에 검찰이 반발하면서 발생했는데, 이번 사태는 정부보다는 검찰 수뇌부에 화살이 집중되고 있다. 반발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검찰 인사가 없는 것도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검찰 내에서는 항소 포기 사태의 책임이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과 박철우 대검찰청 반부패부장 등 검찰 수뇌부에게 있다고 본다. 법무부로부터 항소 포기 외압이 있었다 하더라도 대검은 중심을 지켰어야 한다는 취지다. 실제로 비판의 화살은 ‘신중한 판단’을 지시한 정성호 법무부 장관보다는 검찰 수뇌부에 집중되어 있다. 한 부장검사는 11일 “법무부는 조직의 성격상 그런 의견을 낼 수도 있다. 최소한 대검은 항소를 포기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권력에 굴종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검찰총장은 검란의 원인으로 지목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정부로부터 검찰을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다. 한 예로 참여정부 때 김종빈 당시 총장은 2005년 강정구 동국대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를 할 때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사상 최초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불구속 수사를 지휘하자 사표를 냈다. 특정 사건 처리에 관여하는 것을 검찰이 받아들이면 조직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검찰총장이 검란을 자초했다는 점에서 2012년 한상대 총장 당시를 연상케 한다는 평가도 있다. 이명박정부 당시 한 총장은 ‘봐주기 구형’ 의혹과 대검 중수부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검찰 개혁안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검찰 내부 반발에 부닥쳐 불명예 퇴진했다. 검찰 내에서는 노 대행 역시 검찰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고 평가한다.

이번 사태의 또 다른 특징은 반발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검찰 인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2년 한 총장 당시 검란은 사태 당사자인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을 필두로 채동욱 대검 차장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이 중심 역할을 했다. 2020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징계를 청구하자 검사들이 반발했을 때도 특수부 소속 검사들이 구심점 역할을 했었다. 검사장급 한 인사는 “이번엔 검찰청이 폐지되는 상황이어서 과거와 양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검찰개혁과 검찰 인사로 조직이 파편화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많다. 윤석열정부에서 이 대통령의 불법 대북송금·대장동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검찰 인사에서 대거 좌천됐다. 검찰개혁 상황과 정치권의 공격 등으로 검찰 조직이 위축된 점도 이번 항소 포기 사태의 원인이 됐다. 특수통 출신 한 변호사는 “검찰 수뇌부뿐만 아니라 일선 검사들도 항소장을 제출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이 같은 분위기로 인해 노 대행이 물러날 경우 ‘타깃’이 사라지는 셈이어서 검찰의 반발이 예상 외로 빠르게 사그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재현 박장군 기자 jhyun@kmib.co.kr